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2가 명동역 인근의 한 상가. 1층은 편의점 등이 있고 2~4층은 'A게스트하우스'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한국어 아래 영어와 일어가 병기된 걸 보니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싱글 미니룸부터 트윈룸, 온돌룸 등 다양한 룸 종류가 있었지만, 게스트하우스만의 특징인 도미토리(공동 침실)는 없다. 가장 싼 방은 3만5,000원이고, 대부분은 7만~10만원 수준이다. 인근의 모텔보다 최소 2만~3만원 가량 비싼 가격이다. 방과 부엌, 복도를 살펴보니 꽤 익숙한 모습. 고시원과 많이 닮아 있었다. 직원은 "몇 년 전에 고시원을 개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 퇴실을 하는 외국인 한 명을 만났다. 혼자 서울여행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마카오인 밍(Ming)씨는 "방이 너무 작고 침대는 좁고 불편했다. 짐이 많은데 3층까지 들고 와야 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에 외국인전용 게스트하우스(도시민박)가 허용된 것은 2011년 12월. 현행법상 도심에서는 민박업을 할 수 없지만,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특별한 예외를 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서울에는 정식으로 지정을 받은 377개(1,185객실)의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났다. 하지만 실제로 게스트하우스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곳은 900여 곳이 넘는다. 불법 게스트하우스가 성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불법 업소들은 지정 요건에 맞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게스트하우스는 연면적 230㎡미만인 주택시설인 경우만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업무용시설이나 고시원 등 근린생활시설에서는 게스트하우스 영업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시원을 개조하거나, 한 곳만 지정을 받은 후 4~5개 지점을 불법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 심지어 사우나 내 찜질방 시설을 개조해 좁은 캡슐을 침실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부당요금이나 위생상태 불량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처럼 불법 게스트하우스가 난립하는 것은 관리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탓이 크다. 해당 구청에서 심사를 거쳐 지정증을 발급한 후에 이를 관리하거나 단속하는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외국인 전용시설로 돼 있지만 내국인 이용을 막는 규정은 없다. 때문에 허가를 받은 곳들도 내국인을 함께 받는 경우가 많다. 서울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숙박시설은 원래 위생과 담당인데 (관광진흥법이 적용되는)게스트하우스는 문화관광과가 담당을 하고 있다"며 "시행 초기라 아직 관리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외국인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도시 숙박예약 전문사이트인 부킹닷컴에는 "매트리스와 담요가 청결하지 않았다"(Jiaxin, 중국), "방은 너무 작았고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것이 몹시 어려웠다"(Kevin, 호주) "다른 유스호스텔 등보다 가격이 비쌌는데도 시설이 쾌적하지 않았다"(Lu, 중국) 등 불만을 토로하는 이용후기가 적지 않다. 관광산업 활성화를 도모하려 했던 제도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단속도 시급하지만, 동시에 바람직한 정착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외국인 방문객의 31.1%는 21~30세였고, 1인 혹은 2인이 방문한 경우가 전체의 63%에 달했다. 숙박비 지출액의 경우 미화 100달러 이하인 경우가 33.2%였다.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려는 수요가 상당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외국인 여행객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게스트하우스가 비교적 잘 자리잡은 것으로 평가 받는 서교동 부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는 김모씨는 가정집의 2층을 외국인들이 묵도록 하고 있다. 그는 "1만5,000~3만원 수준의 저렴한 가격에 여행객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등 유럽식 게스트하우스 문화를 조성하려고 했다"며 "유럽여행객들이 많고 요즘은 아시아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근의 D게스트하우스는 영어와 불어를 구사할 수 있는 프랑스인을 매니저로 고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
업무 차 한국을 방문한 이들을 위해 특화된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강남구청역 인근의 A업소는 지점을 6개나 두고 있는 기업형 게스트하우스로 20~30대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했다. 이 게스트하우스의 사장은 "싱글룸이 4만~5만원 정도여서 강남 일대에 가장 저렴한 편인데다 깔끔하고 욕실이 내부에 있다는 점에서 비즈니스 호텔 수요층을 흡수할 수 있다고 봤다"며 "업무를 위해 한국을 단기 방문한 유럽이나 일본인들이 주요 고객"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이대호 인턴기자 (서강대 미국문화학 3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