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신용정보 대량 유출에 이어 은행 시스템에 또다시 큰 구멍이 드러났다. 범죄자들이 가짜 기업 매출채권을 담보로 4년여 동안 무려 3,000억원이 넘는 사기대출 행각을 벌여왔지만 은행은 전혀 감도 잡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사건 주모자 중 한 명은 KT 자회사인 KT ENS의 김모 부장이다. 그는 KT ENS와 납품거래를 해온 복수의 협력업체 공모자들과 짜고 실제 거래가 없는데도 협력업체에 가짜 매출채권을 발행해 줬다. 범인들은 이 가짜 매출채권을 은행들에 담보로 맡기고 대출금을 챙겼다.
재래식 범죄에 불과했지만 내로라 하는 시중은행들의 대출심사는 전혀 하자를 걸러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하나은행 1,624억원,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이 각각 296억원을 털렸고, BS저축은행 등 저축은행 10곳에서도 약 800억원이 대출됐다. 은행들은 범죄를 걸러내지 못한 이유와 범죄의 책임이 KT ENS에 있다고 주장한다. 범인들이 사기를 벌인 '매출채권담보부대출(ABL)'은 기업이 발행한 매출채권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것인 만큼, KT ENS가 내부에서 채권 위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은행들은 또 KT ENS가 담보로 제공된 가짜 매출채권에 대해 이의 없이 꼬박꼬박 이자를 갚아온 것도 범죄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실제 KT ENS은 자사가 발급하지도 않은 가짜 매출채권에 대한 이자를 수년 간 갚으면서도 전혀 이상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최대 책임은 수년 간 범인들이 제공한 담보채권의 진성 여부를 전혀 확인조차 않은 은행에 있다.
금융범죄는 은행 전산망을 뚫고,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운 위조화폐가 수시로 등장할 정도로 나날이 첨단화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장 하나만 가짜로 파면 간단히 위조되는 매출채권 상의 기업인감만 믿고 거액을 대출해줬다는 건 범죄자들에게 은행금고를 열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은행은 이런 식으로 발생한 영업손실을 대출금리 인상 등을 통해 결국 선량한 고객들에게 전가할 것이다. 은행 시스템을 더욱 철저해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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