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태생적으로 인터넷과 연결인지기능을 두 손에 들고 다니는 셈기성세대처럼 머리 채울 필요 없어 창의적인 뇌 사용 가능해기존의 흐름 송두리째 바꿀 것"
두 개의 엄지로 소통하는 아이. 책을 들추기보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은 채 대화를 끊은 젊은이. 기성세대는 이들에게 핀잔만 늘어놓기 일쑤다. 하지만 인문학적 사고를 피하고 손바닥보다 작은 세상에 얼굴을 묻은 채 답답한 일상을 이어가는 우리의 미래세대는 과연 잔소리와 꾸중만 들어야 할 정도로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올해 83세로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미셸 세르에 따르면 이들은 단순히 집중력이 부족한 철부지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쥐고 놓지 않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나 늘어놓을 것 같은 이 노학자는 이들을 이른바 '엄지세대'라 부르며 놀랍게도 "새 세상을 열어가는 용감한 개척자"들이라 칭송한다. '엄지세대'는 그야말로 또 다른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창조자이며 신인류라 치켜세우고 "그들의 나이로 돌아간다면 무엇이라도 발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 상식으로 이해하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른바 '건들거리는' 젊은 세대를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거장의 작은 책(168쪽에 불과하다)은 활자와 인쇄물로 세상을 배워온 기성세대들의 눈으론 발견하기 불가능했던 경계 너머 신세계를 비추는 서치라이트와 같다.
책에서 저자는 '엄지세대'의 발현에 대해 "1990년대 중반부터 인류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세대'이며 이제까지 흐름을 송두리째 바꿀 신인류"라고 말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터넷 기술과 함께할 역사상 첫 세대이며 동시에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세대라 규정한다.
이들은 여러 면에서 인류의 탄생 이후 모든 세대와 완벽하게 다르다. 반세기 넘게 전쟁을 겪거나 경험하지 않은(서구사회 기준으로) 이들에겐 갈등과 다툼의 유전자가 희석되어 있으며 길어진 기대수명 탓에 조상들보다 집착하는 성향이 덜하다. 한마디로 고통과 도덕성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절실히 느껴보지 않은 이들은 명확히 이전 세대와 다른 인류로 구분됨이 옳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기성세대와 비교해 이들의 다름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은 24시간 멈춤 없이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라 불리는 무궁무진한 정보의 바다와 마치 탯줄처럼 태생적으로 이어진 이들은 결과적으로 생체적인 뇌와 인터넷 혹은 컴퓨터와 휴대폰이라 불리는 기계적인 뇌를 동시에 활용하는 놀라운 장점을 지니고 있다. 세르는 '엄지세대'의 두 번째 뇌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첫 번째 뇌가 더욱 창의적이며 인간적으로 쓰일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는 의미에서 이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
저자는 엄지남녀의 두 개의 뇌가 갖는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13세기 로마의 박해를 당한 성인 드니 주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중세 이탈리아의 연대기 작가인 야코포 다 바라지네가 성인들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 에 따르면 드니 주교는 참수를 당한 후 홀연 잘려나간 머리를 양손으로 집어 들고 샘으로 걸어가 머리를 씻어낸다. 드니 주교는 이 기적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세르는 드니 주교가 잘린 머리를 손으로 들고 걸어간 상황을 엄지세대가 항상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지니고 다니는 모습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엄지세대는 노트북을 연다. 아주 자연스럽게 두 눈 앞에, 혹은 두 손 안에 자기 머리를 들고 다닌다. 그 머리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가득 찬 머리다. 학습이라는 것을 컴퓨터라는 상자 속에 던져 버리고 나면, 즉 머리가 잘려나가고 나면 우리의 어깨 위엔 혁신적이고 경쾌한 직관능력이 남으며 우리는 목이 남긴 빈자릴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그곳으로는 시원하게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64~65쪽)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일종의 '해방'을 함께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고 다니느라 창의력을 발휘 못 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구속에서 벗어남을 만끽하는 이들이 엄지세대라 말한다. 두 번째 뇌를 갖게 되면서 이들은 공간의 구속에서도 해방된다. 누구도 독점적으로 소유하지 않는 두 번째 뇌는 정보의 진정한 평등을 이뤘고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엄지세대는 강의실이나 교수의 연구실에 묶일 이유가 사라졌다.
책은 시종일관 엄지세대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교실의 산만함에 대해서도 두 번째 뇌의 활성화에 따른 당연한 진보로 설명한다. 잘린 목을 들고 다니느라 마주할 정보 공유의 어두운 단면, 그리고 첫 번째 뇌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은 독자가 알아서 행간에 채워 넣을 필요가 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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