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153명에 대한 7일 서울고법의 해고 무효 판결은 법원이 과거 경영계 위주로 판단해 오던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조합법 24조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사용자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자금 유동성 위기는 있었다고 판단했다. 2008년 국내외 금융위기에 따라 소비심리가 위축돼 2009년 1월에 현금보유액이 74억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동성 위기를 넘어 구조적이고 계속적인 재무건전성과 생산 효율성의 위기가 있었다고 인정돼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성립된다”고 단언했다.
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쌍용차가 경영상황을 부정적으로 확대 해석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노동계와 정치권에서 조작됐다고 주장해 온 안진회계법인의 2008년 회계감사보고서에 대해 감정을 거쳐 사실과 다르게 작성됐다고 인정함으로써, 증거부족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1심 재판부와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쌍용차가 판매량 예측 수치를 과다하게 계상해 재무건전성 위기를 확대 해석했고, 여러 생산지표를 종합해 판단해야 함에도 HIV(자동차 1대당 노동시간)가 경쟁사보다 높다는 사실만으로 생산 효율성도 낮다고 성급히 결론지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재판부는 쌍용차가 ‘당시 파산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개시를 허가 받은 것만으로도 정리해고 적법성은 성립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회생절차는 채권자의 최대만족 달성이라는 도산법의 목적 달성을 위한 행위일 뿐”이라며 정리해고의 적법성 판단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또 쌍용차가 “정리해고 대상을 165명으로 축소하는 등 해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기업은 일반적으로 중소기업보다 능력이 크기 때문에 해고 회피 노력도 더 많이 요구된다는 게 판례”라며 “무급휴직 등 가능한 우선적 해고회피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단지 희망퇴직제를 활용한 것은 정리해고 규모가 줄었다 하더라도 (대기업으로서 통상적인) 해고회피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정리해고 대상자의 선정기준은 합리적이었고, 쌍용차가 노조와의 형식적인 합의에는 비교적 성실히 임한 것으로 파악했다.
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2012년 정리해고의 경우 대상 근로자들 및 가족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 그 요건을 명확히 제한하도록 판결한 바 있다”며 “이번 판결은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엄격하고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항소심 판결에 따라 쌍용차와 경찰이 “불법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해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결론이 유보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원고들의 주장을 인정하고 노동자들에게 4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해, 노동자들은 예금통장이 가압류된 상태다. 노동법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위법한 정리해고라는 확정 판결이 난다면 노동자들의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쌍용차 측이 인위적으로 왜곡한 것까지 인정되면 회사가 손해를 유발한 것이 돼 피해자 과실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해고무효 소송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손배 소송이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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