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게 언제 쯤일까. 대학 진학을 앞둔 고교 시절? 취업을 걱정하던 대학 졸업반? 운 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맡은 일이 익숙해지다 못해 권태감까지 느끼며 전직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아니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던 결혼을 전후한 시기? 그리고 아이가 생긴 뒤 기쁘고 들뜬 마음 한 켠에서 솟아나던 은근한 책임감을 알아차렸을 때?
모르긴 몰라도 그 모든 시간에 나는 인생을 고민했을 것이다. 고교 시절은 일상의 거의 전부가 수험공부 이다시피 했지만, 그 너머 펼쳐질 대학 생활과 그 후 인생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가 그런 고민과 뒤섞였을 것이다. 졸업 후 진로를 탐색하던 때는 고민의 한가운데에서 '얼마나 벌까' 같은 지극히 속물적인 계산을 하는 주판알 소리가 요란했던 것 같다. 설익은 고민의 색깔이 익어간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사회생활을 하고도 한참 지난 뒤였다.
니어링 부부가 쓴 을 처음 만난 건 제대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이었다. 국내에서 이 책이 나온 2000년은 사회 여기저기서 막 귀농ㆍ귀촌 이야기가 번져나올 때였다. 당장 내 삶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그런 삶에 막연한 동경을 느꼈던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제대로 말하자면 이 책은 읽고 나서 큰 감동을 먹어 늘 기억에 남아 있는 그런 의미의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방안 책꽂이에서 이 책은 언젠가 다시 볼 날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책들과 함께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정말 다시 읽히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그런 시간이 어떻게 왔는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얼른 이해하리라 믿는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책은 20세기 초ㆍ중반 미국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 스콧 니어링이 부인과 함께 뉴욕을 떠나 버몬트, 메인으로 옮겨가 자급자족한 생활을 담고 있다. 니어링 부부 이야기나 이 책의 내용은 알려질 만큼 알려져 굳이 다시 소개할 필요까지 느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책 서문에서 밝히는 귀촌의 이유만 상기시키고 싶다. 책이 처음 나오고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전히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책 서문 제목으로 '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는 문장을 골랐다. 그런 뒤 '불황과 실업의 늪에 빠져서 파시즘의 먹이가 되어 버린 사회를 떠나 버몬트로 이사했다'면서 그것을 '시대의 특별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전세계를 휘저어 놓을 '군사무법자가 판치기(제2차 세계대전 상황을 말한다) 바로 전'에 그들은 '스러져 가는 사회체제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소박하고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사회가 붕괴로 치달아 해체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때에, 올바른 사회 체제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과 힘을 얻을 곳은 어디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평화주의, 채식주의, 집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산업사회가 되기 전 사회 곧, 농촌사회'를 선택했다. 거기서 '돈을 아주 조금만 준비해도 되고, 그 뒤로도 적은 돈으로 잘 꾸려갈 수 있는 독립된 경제'를 꾸렸다. 그것이 '노동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대신 조화로운 삶은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에는 연구를 하거나 책 읽기, 글쓰기, 대화'를 추구했다. 요약하면 니어링 부부는 귀촌이라는 방식으로 '독립된 경제'와 '건강'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을 희망했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삶이 존중되는 모습'을 만들기를 원했던 것이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 수 있을까를 자주 생각한다. 한국 남성 평균 수명으로 따지면 한 30년 남았다. 떠나기 얼마 전부터는 아마도 병으로 고통스런 시간이 될 것이니, 별탈 없이 사는 것은 앞으로 20년 정도, 사회인이 된 뒤 지나온 시간만큼이다.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과 다른 시간이 되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것만 같다.
김범수 국제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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