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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화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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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화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입력
2014.02.0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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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민 시인’으로 사랑 받는 로버트 프로스트는 최고의 문인과 기자들에게 수여하는 퓰리처 상을 4번이나 수상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외롭지만, 후회하지 않는 개척자 정신을 잘 표현한 명시(名詩)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숲 속에 나타난 두 갈래 길 중에서 작가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선택해, 그 길을 따라가면서 인생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회상하는 내용이다.

한국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모굴의 서정화(24ㆍGKL)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이 아니라, 아예 아무도 가지 않은 불모지를 앞장서서 달려온 경우다. 적어도 서정화에게 있어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낭만적인 삶을 노래하는 전원시 일뿐이다. 하지만 서정화는 낭만의 끝자락을 붙잡을 여유가 아직은 없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험하지만 그는 담대하게 인정하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서정화는 이름마저 생소한 여자 모굴스키의 옷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갈아입었다. 스키를 즐기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입문한 것이다.

그러나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을 모두 다 잘해 어릴 때부터 ‘엄친 딸’로 유명세를 뿌렸다. 서정화에게 운동과 공부는 함께해야 할 운명이었다. 서울외고 재학 때 본격 선수로서 길을 걸었지만 대학은 미국 남가주대학(USC)을 포함해 일리노이주립대, 조지워싱턴대, 뉴욕대, 에모리대 등 5군데를 동시에 합격했다. 그는 현재 모굴스키에 전념하기 위해 USC를 휴학 중이다. 올림픽 첫 경험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이다. 홀로 출전한 그는 당시 예선 21위에 그쳐 20명이 오르는 결선에 ‘한 끗’ 차이로 실패해 절치부심, 소치올림픽을 기다려 왔다. 이번엔 ‘비장의 카드’를 갈고 닦아 내심 결선 진출을 낙관하기도 했다. 이른바 ‘카빙 턴’ 기술이다. 실수 없이 소화하면 무난히‘톱10’까지 노려 볼 수 있는 히든 카드였다.

결전의 날은 7일(이하 한국시간)로 잡혔다.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첫 경기였다. ‘살짝’부담감도 있었지만 두 번째 맞는 올림픽 무대여서 여유가 있었다. 서정화는 러시아 소치 산악 클러스터의 로사 쿠토르 익스트림 파크에서 열린 모굴 1차 예선에 앞서 몸을 풀기 위해 연습라운드에 나섰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1차 예선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점프 후 착지 과정에서 몸의 중심을 잃고 10m 이상 눈밭을 굴러 내려온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에 현지 구조대가 출동했고, 그는 병원으로 후송됐다. 모굴에 여러 차례 머리를 부딪힌 서정화는 두통과 어지러움 증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의료진은 가벼운 ‘경추염좌’(목관절 삠) 소견을 내놨다. 서정화는 그러나 8일 예정된 2차 예선 출전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모굴 종목은 1차 예선에서 상위 10명이 결선에 직행하며, 2차 예선에서 나머지 선수들이 다시 경쟁을 펼쳐 10명이 추가로 결선 무대에 오른다.

스키협회 관계자들도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어서 출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서정화의 뜻하지 않은 부상에 사촌동생 서지원(20ㆍGKL)도 눈물을 뿌렸다. 자신을 모굴스키로 이끈 언니이자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서지원은 이날 1차 예선에서 26명 중 24위에 그쳤다. 회전동작 8.9점, 공중묘기 2.40점, 시간 점수는 4.65점을 기록했다.

그는 예선직후 “언니가 다쳤는데 신경을 못써서 안타깝다”라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경기한 적이 없어서 떨렸다. 점프와 스피드 모두 아쉬움이 남았다”면서 “2차 예선에는 상위 10명이 빠진 상태에서 대결하기 때문에 충분히 결선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소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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