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대선 개입 사건의 본류이자 같은 재판부에서 맡고 있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의 향방에 관심이 모아진다.
법원 안팎에서는 두 사건을 "별개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원 전 원장 사건의 경우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대선 개입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글 등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 또 김 전 청장 판결에서는 배척된 '대선 개입 의도'를 입증할 증거로 '원장님 지시ㆍ강조 말씀' 문서가 있다. 더구나 대북심리전단이 투입된 활동이 국정원 수뇌부의 지시 없이 이뤄진 개별 직원들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논리 전개상 무리가 따른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두 사건의 공소사실이 '대선 개입'이란 키워드로 연결돼 있지만 댓글 사건 당사자인 국정원 여직원 외에는 증인이 겹치지 않는 등 교집합이 거의 없다"며 "(원 전 원장 사건은) 댓글, 트위터 글 등 객관적 증거가 제출된 상황이라 두 사건을 섣불리 연결 지어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두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의 이범균 재판장은 이달 중순 예정된 법원 정기인사에서 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에 나타난 재판부의 판단 논리가 원 전 원장 재판에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제외한 경찰 관계자들이 모두 김 전 청장의 축소ㆍ은폐 지시가 없었다고 진술했고 이는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원 전 원장 재판에서도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직원들이 "선거개입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고, 검찰에서 원 전 원장에 불리한 증언을 했던 직원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재로선 검찰의 혐의 입증이 부족해 보여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댓글과 트위터라는 객관적 증거에 집중해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입증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정회 부장검사)은 6일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을 당초 2,600여개에서 1,100여개로 줄이고, 선거ㆍ정치 관련 트위터 글도 121만건에서 78만여건으로 축소한 분석 결과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다시 공소장을 변경해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지만 변호인이 의문을 제기한 일부 계정과 게시 글을 과감하게 빼고 확실한 증거로 유죄 판단을 끌어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검찰로서는 김 전 청장의 항소심 및 원 전 원장 재판의 공소유지가 사활을 건 싸움이 될 전망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어떻게 난관을 돌파해갈 지 지켜볼 대목이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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