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직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를 축소ㆍ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6)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허위로 드러난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누구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는 6일 공직선거법ㆍ경찰공무원법 위반,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지시한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그 시기와 내용에서 최선의 것이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며 "당시에 확인된 내용을 단정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고려해 수사 확대 여지를 밝히는 등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도 있었다"고만 지적했을 뿐 이 사건의 형사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밤 9시에 전화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는 김기용 전 경찰청장의 법정 증언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TV토론에서 국정원 의혹을 지적한 직후 이뤄진 발표 시점 ▦국정원 여직원의 접속기록 30만건 중 20만건은 분석도 하지 않고 "전수조사 했다"고 발표한 점 ▦발표 전 경찰 상부가 국정원, 새누리당 관계자들과 수 차례 통화하거나 만난 점 등 관련 증거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신 김 전 청장이 축소ㆍ은폐를 지시했는지에 대한 경찰 내부의 진술을 유ㆍ무죄 판단의 주된 근거로 삼았으며,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수사 부실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유력한 간접증거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을 제시했지만,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진술 상호간에 모순이 없는 다른 (경찰 측) 증인들의 진술을 모두 배척하면서까지 믿을 만한 특단의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직급, 성향 등이 모두 다른 경찰들이 시차를 두고 법원에서 증언하면서 서로 모의해 진술을 허위로 맞출 가능성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면서 "검찰이 특정인의 진술만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객관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공소를 제기한 것이 아닌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무죄 선고의 파장을 예상한 듯 "오로지 증거를 근거로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며 이례적으로 재판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위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증거의 객관성에 집착한 나머지 국가의 근간이 되는 대선 공정성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교묘히 비켜가는 결론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김 전 청장은 선고 직후 "진실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반드시 밝혀진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문을 본 뒤 입장을 정리하겠다"고만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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