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본사.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이제 수은호를 어떤 방향으로 운항해 나갈지는 새로운 은행장의 조타 능력과 여러분들 노력 및 헌신의 몫"이라는 이임사와 함께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수출입은행을 새로 이끌고 갈 신임 은행장은 아직 임명되지 않은 상태. 남기섭 전무이사가 기약 없이 대행 자리를 맡게 됐다.
수출입은행장 후임 자리가 채워지지 않으면서 금융권에 공기업 및 협회 수장 자리의 공석이 또 하나 늘어났다. 손해보험협회의 경우 작년 8월 문재우 전 회장이 퇴임한 이후 벌써 5개월이 넘도록 공석이고, 정책금융공사도 진영욱 전 사장이 물러난 뒤 4개월째 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주택금융공사 사장 자리 역시 서종대 전 사장이 임기를 남기고 물러나면서 비어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런 공석 사태가 모피아(재정부 및 금융위 관료) 낙하산 관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 손보업계에서는 손보협회장에 모피아 출신을 밀고 있는 금융위원회가 선임 절차를 무기한 보류하라고 지시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 자리에 모피아 출신을 앉혔다가 낙하산 논란이 거세질 경우 자칫 다른 금융공기업 수장 자리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그래서 다른 금융공기업 수장 인사가 끝나면 그때서야 손보협회장 인선 절차를 재개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장의 인선이 늦어지는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기획재정부 산하의 수출입은행 행장 자리는 역대로 예외 없이 모피아 출신이 독식해온 자리. 정부 내에서 "낙하산 논란이 많지만 그래도 국책은행장인 수출입은행장 자리는 괜찮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사상 최대의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로 확 꼬여 버렸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인사에 신경 쓸 겨를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민심이 악화된 상황에서 자칫 모피아 낙하산 인사를 강행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정부나 금융당국 수장의 책임론이 강하게 대두되는 상황에서 완전히 판을 다시 짜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책금융공사 사장 자리의 경우는 금융위가 모피아 출신을 밀었으나 본인이 고사하면서 인선이 꼬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금융공사가 조만간 산업은행에 흡수 통합될 예정이라 한시적인 자리라는 이유로 기피를 하는 것"이라며 "이 또한 모피아 낙하산의 폐해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정은 다르지만 3월말 임기가 끝나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차기 인선도 오리무중인 상태. 인사청문회 일정을 감안할 경우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청와대에선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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