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 축소ㆍ은폐 지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청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2012년 12월 15일 수사팀으로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는 보고를 받고도 다음날 허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한 것과 40개의 아이디를 찾아내고도 수서경찰서에 제때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검찰이 공소 사실에 대해 충분히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청장에 대한 외압을 폭로한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의 증언도 다른 경찰관들의 진술과 배치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객관적 물증이 없는 이번 재판에서 관련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재판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 과정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고 언급했듯이 결과적으로 확인된 허위수사 발표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된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증이 없어 관련자 진술과 배경, 정황 등을 종합해 판결했다는 재판부 발표와는 달리 범죄 의도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는가 의문이 든다.
외압을 받았다는 권 전 과장의 진술과 격려 전화였다는 김 전 청장의 주장이 엇갈린 대목에서는 외압을 느꼈다며 구체적 정황을 제시한 쪽의 진술에 무게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선서까지 거부한 쪽의 진술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관련 경찰관들의 진술 번복과 상부의 지시, 또는 공모 가능성은 배제한 채 권 전 과장의 진술을 신빙성 없다고 판단한 부분도 이해하기 어렵다. 은폐 정황으로 제기된 김 전 청장과 국정원 고위간부, 새누리당 고위당직자간의 여러 차례의 통화 등을 재판부가 판단 근거로 삼지 않은 대목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소극적이고 미진한 수사도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인다. 검찰은 사실 관계를 보완해 앞으로의 재판에 대비하는 한편 원세훈 전 원장 등 국정원 사건 핵심 인물에 대한 공소유지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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