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의료진의 절반 정도가 수련의(인턴, 레지던트)다. 전국적으로 1만3,000여명 정도 된다. 3월 수련의의 근무시간을 주 88시간으로 제한하는 법령 시행을 앞두고 수련병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수련의의 근무시간을 줄여 환자 안전과 수련을 강화하는 것은 그 동안의 '비정상들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환자 관리 업무를 대신할 전담의사가 더 필요하고 수술장마다 대체ㆍ보조인력이 수십명 더 필요하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당직도 해야 한다. 따라서 추가 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상급종합병원들은 3월부터 입원 환자를 줄이고 환자를 돌려보내야 한다. 수련의의 질 향상을 위해 임상교수들이 선택진료 환자를 줄이고 수련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전공의(레지던트)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도제식 교육 시절 수련의는 월급조차 없었다. 개인 병원에서 야간 당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식 수련 제도가 1960년 말 정착되면서 수련은 병원의 몫이 됐다. 병원 예산의 3% 정도가 수련과 관련해 사용된다.
교수가 수련의를 일대일로 잘 가르치려면 환자 진료 시간과 수술 시간, 직원 대기 시간이 모두 길어진다. 결국은 환자 수를 줄여야 하고 그러면 병원 수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수련의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수련의의 수준이 떨어지고 질 낮은 의사가 배출돼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1965년부터 수련의 지원 대책을 만들었다. 1985년에는 이 대책을 지원하는 법도 만들었다. 이 덕분에 수련의 질이 좋아졌지만 병원에선 도리어 비용 증가와 생산성 저하, 대기 인력 증가 등의 문제가 생겼고 각종 시설과 장비도 더 많이 필요해졌다. 미국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어는 전공의 월급의 70%(1억~1억5,000만원)를 지원하고 병상 수와 수련의 수를 기준으로 보험에서 13%를 가산해 지급한다. 미국의 또 다른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도 비슷하다.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병원에 보험금을 가산해 지급하는 것은 수련 비용이라기보다 의료현장에 꼭 필요한 보조 인력을 지원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안정과 법 수호를 위한 양질의 변호사ㆍ법관ㆍ검사를 양성하는 사법연수원의 연수생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사법연수생들에게 국가의 지원이 제공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는 사회보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수련병원들이 사회보험에서 정한 표준진료 지침을 임상에 적용하는 교육을 하는 것은 국가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며 국민 안전과 건강을 위한 공공의료의 핵심 요소다. 다시 말해 신규 의사로 하여금 이 지침들을 임상 현장에서 잘 적용하도록 수련시키는 것은 미래의 좋은 의사를 만들기 위한 수련병원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선택진료제 개선을 계기로 정부는 수련병원의 환자 진료를 정상화시키고 수련의 질 향상에 힘쓰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정상화에 따른 비용을 반드시 보조해야 한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 진료 공백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서울대 의대 건강사회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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