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1일 뉴욕의 새 총기규제강화법(NY SAFEㆍSecure Ammunition and Firearm Enforcement Act)이 연방지방법원으로부터 대부분 헌법에 합치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 법안은 2012년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일어난 ‘샌디훅 참사’ 이후 앤드루 쿠우모 뉴욕지사가 작년 1월에 발의한 강력한 총기규제법이다. 법안의 핵심은 군용(軍用)급 소총류 판매의 전면 금지, 정신 이상자의 총기 소유 제한, 총기 판매 시 신원 조회 강화, 그리고 탄창에 장착할 수 있는 실탄 수를 7발로 제한하는 것이다.
뉴욕주 버펄로 연방지법의 윌리엄 스크레트니 판사는 당시 판결에서 뉴욕주의 총기규제강화법 조항 대부분이 헌법에 합치하지만, 탄창에 장착하는 실탄을 7발로 제한하는 것은 ‘자의적인 규제’로 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왜 7발인가?
사실 이번 판결 이전에도 7발 규정에 대해선 여러 차례 논란이 있어왔다. 지난 해 쿠오모 주지사가 법안을 발표했을 때 시민들은 이 조항이 탄창의 크기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탄창 안에 들어가는 총알 개수에 관한 것인지 혼란스러워 했다. 탄창의 크기였다면 시중에 보급된 총 대부분이 실탄 10개가 들어가는 자동 권총이라 기존 총들은 모두 불법이 되고 만다. 시중에 7발 탄창 총이 없으니 성능이 약한 6발 리볼버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쿠오모 지사는 뉴욕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논란은 단순히 법안이 가지는 ‘문법적 오류’때문이라며 기존의 총을 휴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즉 탄창의 크기는 관련 없고 탄창 안에 7발이 넘는 총알만 장착하지 않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탄창에 장착할 총알의 최대 개수가 중요한 이유는 그 수가 곧 탄창을 갈지 않고 연속해서 쏠 수 있는 총알의 숫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득이하게 총으로 즉각 대응을 해야 할 경우 적정한 양의 총알이 7발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여전히 ‘왜 하필 일곱 개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뉴욕주의 다수당 대표 조 머렐은 “누군가는 더 많은 숫자를 원할 수도, 누군가는 더 적은 숫자를 원할 수도 있다. 7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숫자로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개수라 생각했다” 고 설명했다.
또한 최대 7발이 나온 배경에는 법안을 발의한 시점에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로스앤젤레스의 한 강도 사건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2013년 1월 초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언론들은 ‘과연 여섯 개의 총알이 당신의 집을 지키기에 충분한가’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내세우며 보도했다. 한 여인이 무단 침입한 괴한을 향해 6발들이 리볼버로 반격해 무려 5발이나 맞혔음에도 그 범인은 도망가 버렸다. 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미국 국민들은 ‘6발은 충분 치 않다’, ‘만약 괴한이 둘이었으면 어떡하냐?’라며 들끓었다. 이 사건으로 6발의 총알은 개인의 안전을 지키기에 부족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됐다.
지나친 자유가 총기사고 불러
이 총기규제강화법안은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총기 규제법으로 뉴욕주이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는다. 미국 제1의 도시이자 진보성향이 강한 뉴욕시가 있는 뉴욕주는 지난 대선 때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진 대표적인 민주당 지역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샌디훅 사건 이후 종합적인 총기 대책에 관한 발언을 했을 때에도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쿠오모 지사는 즉각 동참의사를 피력했다.
뉴욕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들은 총기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다. 총기 소지에 나이제한을 두고 있는 주는 20개 주에 불과하며, 30개 주에서는 초등학생이 총기를 보유해도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 버몬트 주에서는 16세 학생이 성인영화를 보는 것은 안되지만, 총기 소지는 법룰상 가능하다. 총기 구입이 운전면허보다 쉽다는 미국에서는 현재 3억만 개의 총이 유통되고, 2,000여 종의 다양한 총기가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다. 총기 구입 시 신원 조회도 형식적인데다 총기등록제 역시 현재까지 실시되고 있지 않다.
미국만큼 총기에 관대하면서 또 총기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 나라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은 총기 보유 가정 비율은 물론, 총기 사고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다. 스위스의 경우 성인 남성은 법적으로 다양한 무기를 보유할 수 있지만 총기 관련 범죄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총기는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고 총기를 휴대하고 집 밖으로 나갈 때는 신고를 해야 하는 등 총기가 엄격히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준전시 상태인 이스라엘조차도 총기에 관해서는 스위스와 유사한 엄격한 관리가 적용된다.
미국 법무부는 2000~2008년에는 연평균 5건 일어나던 총기 난사 사건이 2008년 이후에는 3배로 늘고 사망자도 급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뉴욕주 총기규제강화법안이 나오기 전까지 이렇다 할만한 총기 규제 법안이 시행된 적이 없다.
반면 장기침체를 겪은 ㅁ영국의 경우 1996년 덤블레인 대학살이 일어난 뒤 영 정부는 모든 무기와 권총에 대한 민간인 소유를 즉각 금지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현재까지 영국에서는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유-규제 이전에 책임이 우선
미국의 총기 소유에 대한 관대함은 미국인들이 신체를 보호할 자유를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가장 신성한 권리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정 헌법 제2조가 총기 소유를 인정하는 가장 큰 근거다.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라는 이 조항은 ‘주가 무장할 권리’인가 ‘개인이 무장할 권리’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1976년 당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이 총기 소유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 판결 한 이후 ‘개인의 무장할 권리’로 굳어지고 있다. 이 판결로 총기 소유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 권리임을 확인 받았다. 이후 헌법뿐만 아니라 미국총기협회(NRA)의 로비 등 경제적 이권과 얽히게 되며 총기 규제는 오랜 시간 제자리걸음 상태다.
총기 규제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됐지만 첨예한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대립과 미국총기협회의 입김 때문에 정치인들이 함부로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화두가 됐다. 실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샌디훅 총기 사건 이후 “정치인들의 변화는 기다릴 수 없다.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총기를 둘러싼 자유냐 규제냐의 논란 속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책 조언자이자 연설 초고자였던 에릭 리우는 총기 문제는 이제 자유와 규제가 아니라 ‘책임’을 논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총기의 자유-규제라는 두 세력의 대립은 분노와 갈등만 조장할 뿐 해결책을 낳을 수 없다고 말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총기 소지를 운전면허에 비교해 말한 적이 있다. 헌법에 이동의 자유가 명시돼 있지만 자동차 면허 및 등록제를 실시하고 속도제한 및 안전벨트 착용 같은 제한을 두는 것을 위헌이라고 하지 않는다. 즉 기본적인 총기등록제와 총기 구매자 신원 확인은 자동차의 면허와 안전벨트와 같은 자유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자유에 대한 책임이란 것이다.
책임 없는 무분별한 미국의 총기 자유로 하루에 30명이 넘는 시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총기에 대한 자유와 규제를 두고 싸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요구하는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총기 사고를 걱정하는 이들은 “미국의 현실은 개인의 신체를 지킬 권리가 아니라 타인의 신체를 해할 권리로 총이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미국 시민을 지키는 건 7발이나 10발의 총알이 아니라 책임을 아는 성숙한 시민정신이다”라고 주장한다.
김연주 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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