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5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20~25일 열기로 합의하면서, 상봉행사 기간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일부 겹치게 됐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인도주의 행사와 북한 도발에 대응한 무력 시위성 군사훈련이라는 정반대 성격의 이벤트가 동시에 열리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 당연히 이 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군사훈련과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별개라며 단호한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에 줄기차게 반발해 왔지만 이산상봉 행사 때문에 훈련 일정이나 내용이 바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어디까지나 방어적, 연례적 훈련인 만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군 당국은 가상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하는 '키리졸브' 연습을 이달 마지막 주에 시작해 2주간 실시할 예정이다. 이어 야외 기동훈련인 '독수리 연습'을 4월 말까지 실시한다. 다른 관계자는 "키리졸브는 병력을 대규모로 투입하지 않는 실내 지휘소 연습에 불과하기 때문에 북한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며 "이산가족 상봉과 며칠간 겹치기는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자신감 넘치는 겉과 달리 군 당국도 내심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 당국은 당초 6일이나 7일 키리졸브 훈련 일정과 내용을 브리핑하고 북한에도 통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주 초에 발표하는 것으로 순연했다. 북한 대응을 의식해서다.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에서 신중론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며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성사된 마당에 성급히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북한과의 갈등소지를 봉합하더라도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우리 정부가 키리졸브 훈련 일정을 북한에 통보하거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는 시점에 북한이 시비를 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격하게 반발해 온 만큼 어떻게든 딴지를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대남 압박수위를 높이기 위해 우리측이 꺼려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를 꺼낼 경우 자칫 이산상봉 행사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평화적, 인도적 행사라는 점을 부각시켜 우리 정부를 궁지에 몰려 할 것"이라며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을 무산시킬 수는 없겠지만 선전공세를 강화해 훈련 강도를 낮추거나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등 여러 가지 노림수를 갖고 집요하게 우리측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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