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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2월 6일] 카미노 <2> 대체 내가 여기에 왜 왔지?

입력
2014.02.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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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천천히 걷고 자주 쉬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힘들어도 어느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걸어야하는데 너무 자주 쉬면서 오히려 리듬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결국 약 12시간이 걸려서 다음 마을인 론세스발레스에 도착했다. 마지막 세 시간 정도는 아무 기억이 없다. 마을이 가까워졌을 무렵 들려오던 종소리에 희미해지던 정신이 돌아왔다. 죽을 똥을 싸며 도착한 수도원에서 허겁지겁 먹고 씻고 좁은 침낭에 들어가 누우니 높다란 천장에 오늘 걸었던 길이 펼쳐진다.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지쳤지만 피레네에서 바라본 저 아래의 풍경은 말도 못하게 아름다웠다. 땅보다 하늘이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의 높이에서 내가 걸어 올라온 길을 바라보자니 이 작은 발로 이렇게 많이 올라왔다는 것이 문득 대단한 일처럼 느껴졌다. 발의 성실함과 건강함이 참으로 고마웠다.

어찌되었든 자기 전까지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대체 내가 여기 왜 왔지?"였다.

보통 새벽 5시쯤 일어나서 걷기 시작한다. 아침에는 전날의 죽을듯한 피로와 고통은 어디론지 가버리고 새로운 힘이 생긴다. 이른 시간이라 식욕이 없으므로 일단 걷기 시작한다. 새벽 공기는 상쾌해서 아침 몇 시간은 잘 걷는다. 세 시간쯤 걷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샌드위치를 준비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사 먹기도 한다. 여기서의 커피는 '모든 근심을 잊게 해줄 만큼' 맛있다. 그렇게 먹고 쉬다가 다시 일어나 걸으려면 그 순간이 가장 고통스럽다. 물집투성이의 퉁퉁 부은 발을 딱딱한 등산화에 집어넣으면서 모두들 끙끙거린다. 그러나 먼저 일어난 사람이 아직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주고 서로의 발을 들여다보며 걱정해준다. 그리고 누구나가 누구나에게 "부엔 카미노(좋은 여행하세요)!"를 외친다. 곧 쓰러질 것 같은데 늘 '아직 조금 더' 가야한다.

셋째 날, 백 여 명이 함께 자는 숙소에 그야말로 기어서 들어가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연주한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 첫 악장을 들으며 울었다.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가는 것을 그의 피아노가 막아주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음악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알았다.

초반에 비가 자주 왔다. 비가 오는 날은 걷기가 열배는 힘들다. 흙길은 전부 진흙 밭이 된다. 진흙은 등산화 밑바닥에 잔뜩 엉겨 붙어서 발이 엄청나게 무거워진다. 내리막에 자갈길이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작은 돌에 미끄러져 제대로 걸을 수가 없는 것이다. 힘을 잔뜩 주고 걸어서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리는 다 젖어서 차갑고, 무거운 배낭을 멘 등짝은 땀이 차서 덥다. 비를 맞으며 한참 걷다가 밀밭 한가운데서 벤치를 만났다. 이왕 젖은 김에 거추장스러운 우의를 벗고 벤치에 누웠다. 덥고 습한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난다. 얼굴에 찬 빗방울이 눈물처럼 떨어졌다. 흐리고 무거운 하늘은 말이 없고, 밀밭 사이사이에 온통 붉은 양귀비꽃이다. 바람이 불어 밀밭에 파도가 치면, 양귀비는 바다에 뜬 꽃처럼 보였다. 그 모든 것이 위안이 되었다. 조금밖에 걷지 못해서 같이 출발한 사람들보다 많이 뒤쳐졌지만 괜찮다. "오늘은 조금 걷는 날!"이라고 외치면 그 뿐이다.

힘들다는 것밖에 느껴지지 않아 후회로 가슴이 쪼그라들 때도 있다. 그러나 눈을 들면 모든 것이 그대로 아름다웠다.

매일 잠들기 전에 두려웠다. 이 길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지? 괜히 와서 고생만 하는 것이라면? 결국 아무것도 못 느낀다면? 그리고 매일 같은 결론을 내리며 잠들었다. 그냥. 그냥 걷자. 주어진 시간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좋은 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것이다. 내일은 어김없이 온다. 내일은 내일 걸으면 된다. 오늘 내일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면 늘 기분이 좋았다. 어제 두려워하던 내일이 오늘이 되어 '그냥 걸으면 되는 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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