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으로 출현한 철도는 19세기 사람들의 시ㆍ공 개념을 바꿔 놓았다. 프라이버시(Privacy) 개념이 싹튼 것도 철도여행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영국인들은 덜컹거리는 객실에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있어야 했고, 어색함을 덜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래도 상대와 눈이 자꾸 마주치는 난감함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혼자 있을 권리라는 의미의 프라이버시가 '사람의 눈을 피하다'는 뜻의 라틴어 프리바툰(Privatun)에서 유래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 프라이버시를 실정법상 권리 개념으로 끌어올린 건 1890년 미국의 새무엘 워렌과 친구인 루이스 브랜다이스였다. 보스턴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워렌은 자신의 딸 결혼 소식이 지역언론에 가십성으로 시시콜콜 보도되자, 브랜다이스와 함께 사생활 보호를 위한 법 이론을 궁리해 냈다. 이들은 하버드로리뷰((Harvard Law Review)에 기고,'혼자 있을 권리(The right to be let alone)'를 '프라이버시권'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 디지털시대에 프라이버시는 자신의 정보를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로 타인에게 전달하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정보의 자기결정권으로 확장된다. 문제는 디지털의 특성상 한번 기록된 정보는 지워지지 않을뿐더러, 쉽게 복제ㆍ유출돼 당사자의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생성ㆍ저장ㆍ유통되는 글과 사진 등 개인정보에 대해 삭제ㆍ수정ㆍ영구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 '잊혀질 관리(The right to be forgotten)'가 대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가장 먼저 이를 명문화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확정, 올해 발효를 추진 중이다.
■ 유례 없는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정부는 주민등록번호제도 개편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개인정보를 온전히 지킬 수는 없다. 각자의 경각심이 있어야 한다. 온라인에서 무심코 흘린 정보들이 때로 혼자 있고 싶을 자유마저 빼앗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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