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초부터 평화공세를 펴고 있다. 지난해 북한이 3차 핵실험 이후 쏟아낸 '말 폭탄의 공포'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은 웬 평화공세냐고 의아해 할 것이다. 장성택 일파를 처형한 김정은 정권이 내부 위기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대남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던 정부당국은 북한의 평화공세를 위장평화공세로 보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연일 '중대제안'의 진정성을 강변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북한이 연초부터 강조하고 있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의 비방중상 및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 핵재난 방지를 위한 노력에 진정성이 있을까.
북한이 김정은 제1비서의 결단임을 강조하면서 평화공세를 펴는 데는 이전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일시적인 국면전환을 위한 평화공세라기보다 김정은 시대 새로운 남북관계 설정이란 차원의 큰 그림을 갖고 평화공세를 펴는 것으로 보인다. 중대제안에서 과거에 발견할 수 없는 선대 지도자들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난달 23일에 발표한 국방위원회 '공개서한'에서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절대화하여 겨레와 민족의 소원을 외면한 채 대결만을 주도하여온 당국자들에게는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여 남북한 당국자들 모두의 책임문제를 거론했다. 과거 같으면 민족과 국토분열의 책임이 미국과 남조선 당국에게 있다고 주장했을 북한이다. 이번 중대제안에서 자기들 역대 지도자에게도 '대결의 악순환'을 끊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대제안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선대 지도자들의 책임문제까지 거론한 것 같다. 북한에서 수령은 무오류성이 보장된 신적존재란 점을 감안하면 선대 수령 책임론을 편 것은 파격이다.
둘째, 이번의 중대제안은 수세적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봄만 해도 북한은 핵실험으로 얻은 자신감을 반영해서 미국에 전면대결전, 남한에 대해서는 전시상황을 선포하고 통일대전을 공언하는 등 공세적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남측에서 급변사태론과 통일대박론이 부각하면서 북한은 "크지 않은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도 순간에 전면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하면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반테러전쟁을 감행할 때와 유사한 형태로 북한은 현 정세를 전쟁위험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공조로 핵전쟁을 막아내자는 수세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셋째, 지금의 평화공세는 인민생활향상 공약을 실현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명분축적용일 수 있다. 북한의 중대제안을 우리 정부가 거부한 것은 핵과 관련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핵실험→ 제재→ 협상→ 보상의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누리는 현실에서 핵과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 전제되지 않은 그 어떤 평화제안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원칙론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중대제안을 선전공세로 단정하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북한은 무산시켰던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재개하면서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이려 하지만, 남측의 반응은 인도적 사안의 분리접근을 시도할 뿐 냉담하다. 평화로운 대외환경 조성에 실패하고 인민생활 향상을 실현하지 못할 경우 북한당국은 평화제안을 거부한 남측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될 것이다.
결국 북한이 핵과 관련한 새로운 중대제안을 할 때까지 중대제안의 진정성을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대결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평화번영을 누리려면 핵과 관련한 악순환의 고리를 함께 끊어야 한다. 중대제안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두 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남북 고위급 대화와 6자회담 등 대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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