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편 서사시로 알려진 인도의 '라마야나'는 서양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에 비견되는 아시아의 고전이다. 비시누 신의 화신 즉 아바타인 라마 왕자의 파란만장한 무용담을 2만4,000시절(詩節)로 풀어낸 이 대서사시는 인도의 곳곳에 퍼져나갔고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티베트 중국 등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됐다. '라마야나'를 빼놓고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의 문화를 이야기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서양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듯 아시아를 이해하려면 각국의 설화와 신화를 알 필요가 있다. 소설가 김남일과 방현석이 20년에 걸쳐 '라마야나'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이야기 100개를 모아 책을 낸 까닭이다. (아시아)는 오랜 기간 서구가 지배하는 서사의 세계에서 소외됐던 아시아의 서사에 눈을 돌려 아시아의 대표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책이다. 두 작가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 최고의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 아니라 아시아의 수많은 이야기로 가는 관문과 같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는 이야기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책이다. '방글라데시의 우유배달부'로 시작해, '라마야나'와 더불어 인도의 3대 서사시 중 하나로 꼽히는 '마하바라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로 알려진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 페르시아의 장편 서사시 '샤 나메', 일본을 대표하는 민족 신화 '이자나기' 등 100개의 이야기를 두 권의 책에서 풀어 놓는다. 대서사시인 '라마야나' '샤 나메' '마하바라타'가 모두 세 편으로 나뉘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94개가 수록됐다. 한국 이야기로는 '주몽신화' '바리공주' '처용설화'가 실렸다.
두 작가가 아시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4년 다른 작가들과 함께 베트남을 여행하면서부터다. 그 때의 인연이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의 시선은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돼 계간지 '아시아'를 내기에 이르렀다. 아시아의 민화와 설화, 서사시 등 서사 자원들을 조사하는 두 작가의 작업은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 가운데 하나인 아시아 스토리 조사 사업의 지원을 받아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이번 책에 담긴 100개의 이야기는 문화부가 중앙 아시아 나라들과의 문화교류와 협업을 목표로 건립 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을 활용하기 위한 문화 교류 사업으로 창설한 '아시아 스토리텔링 위원회'가 2011년과 2012년 각각 선정한 '아시아 100대 스토리'를 추려 정리하고 다듬은 것이다.
방현석은 아시아의 가치를 구현하겠다며 창간한 '아시아'를 8년간 만들면서 "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아시아를 하나로 규정하는 건 폭력이고 오류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아시아는 수많은 아시아로 정의할 수 있다"며 "우리의 몫은 아시아가 어떻게 다른 가치와 문화 속에서 성장해 왔고 다른 길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김남일은 아시아의 이야기를 조사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캄보디아에 세 번이나 다녀 오면서도 앙코르와트에 새겨진 것이 '라마야나' 이야기인 줄 몰랐다. 아시아의 이야기들을 접하며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 못지 않은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이 적어 영어 등 다른 언어를 번역해 읽었다."
아시아의 고전 서사는 서양에서 먼저 주목했다. 아시아의 구전 설화나 신화를 활자로 옮긴 책 중 상당수가 서양의 것이다.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남일 방현석 두 작가는 "화신, 분신이란 뜻인 아바타도 원래 서양의 이야기가 아닌 인도 신화에 근거한 개념"이라면서 "우리가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콘텐츠는 아시아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이렇게 울창하고 넓은 정신의 숲을 두고 저 멀리 서구의 숲이 전부인 줄 생각하며 작은 야산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이 책에 수록된 것 중 좋은 이야기들을 단행본으로 내거나 그런 작업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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