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해외로 도피했다 검찰에 자수한 2010년 '워커힐호텔 외국인 카지노 사기도박 사건' 주범 김모(56)씨는 지난해 7월 필리핀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지명 수배 상태였던 김씨는 지난해 12월 20일 검찰에 출석하기 전까지 약 5개월간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별 어려움 없이 시내를 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피 직후 인터폴을 통해 김씨를 수배한 경찰은 출입국 사무소로부터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입국 사실 자체를 몰라 최근까지 김씨를 우선송환 대상에 올려놓고 송환 의지를 불태웠다. 경찰 관계자는 "여권 사진만 김씨의 것이지 타인의 신상정보를 통째로 도용해 만든 '위명(僞名)여권'으로 들어와 귀국한 사실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김씨 사례에서 보듯이 철저해야 할 출입국 관리 시스템이 위명여권 사용에는 속수무책인 것으로 드러났다. 4일 법무부에 따르면 2008~2013년 위명여권을 사용하다 적발되거나 자진신고한 외국인은 1만8,588명에 이른다. 국적별로는 중국 위명여권이 8,623건(46%)으로 가장 많았다.
법무부가 합법적인 구제를 위해 한시적으로 2012, 2013년 두 차례 시행한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 기간에 신고한 5,886명을 제외하면 최근 6년간 출입국심사 과정이나 국내 입국 뒤 사후 적발된 위명여권 사용자는 1만2,000여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적발된 인원일뿐 출입국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입국한 외국인 수는 추정조차 하기 어렵다. 지난달 속칭 '환치기' 영업으로 붙잡힌 주한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전직 공관원이나 지난해 4월 중국에서 살인을 저지른 뒤 일곱 차례나 한국과 중국을 오가다 체포된 50대 중국인처럼 수사기관에 검거된 뒤에야 위명여권 사용이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위명여권으로 들어오면 인터폴 수배자라도 다른 사람으로 조회돼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위명여권을 신청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여권 발급기관 입장에서는 불법이지만, 적발되지 않고 발급만 되면 다른 나라에서는 정상 여권으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법무부는 2012년 1월부터 17세 이상 국내 거주 모든 외국인들의 지문과 얼굴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과거 국내에서 범법 행위로 강제 퇴거된 외국인 정보도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됐다. 여권 상의 사진, 개인정보가 사용자와 일치하는지 확인해 위명여권을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위명여권을 사용해 처음 입국한 외국인은 DB에 자료가 없어 가려낼 수 없다. 테러리스트나 북한 공작원 등도 위명여권으로 얼마든지 국내에 잠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무부 관계자는 "위명여권은 일단 발급되면 외관상 정상적인 여권과 동일해 적발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인터폴 등과 협력해 범죄자 등 위해 세력의 입국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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