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3사 고객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대책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졸속 대책을 마련했다가 여론의 뭇매와 영업 정지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 텔레마케터들이 집단 반발하자 대책 마련 10일만에 슬그머니 영업제한 기간을 단축한 것. 금융당국의 미숙한 대책으로 애꿎은 텔레마케터들을 희생양 삼았다는 비난이 비등하면서 금융당국 수장들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4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3월말까지 중단키로 했던 금융사의 전화영업(TM)을 3월부터 전면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은행, 보험, 카드사 등 모든 금융사의 전화를 통한 비대면 영업이 한 달여 만에 재개되게 된다. 다만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통한 영업이나 대출 모집ㆍ권유는 예정대로 3월말까지 중단된다.
보험사의 경우는 이르면 다음 주 후반부터 TM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금융위는 적법성 확인이 용이한 보험회사에 고객의 동의를 받은 고객정보를 자체점검하고 최고경영자(CEO)가 적법성을 확약한 문서를 7일까지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금융당국은 CEO의 서명이 든 이 확인서를 제출해야 보험사의 TM 제한을 풀어준다 방침이다. 카드사 등 나머지 금융사는 보안 체크리스트 점검 등을 거쳐 오는 14일까지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후 금융당국이 2주간의 점검을 거쳐 3월부터 모든 영업을 풀어주기로 했다. 고승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금감원이 CEO 확약을 확인하면 보험회사들은 이르면 다음 주 후반부터 TM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머지 금융사의 TM은 2월까지는 중단되며 3월부터는 모두 예전대로 원상 복구된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전체 보험사 텔레마케터 3만1,000명 가운데 영업제한조치로 영향을 받은 아웃바운드(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영업) 텔레마케터가 2만6,000명이라며 이중 1만7,000명이 우선 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24일 카드사의 대규모 정보 유출 대책의 일환으로 금융사의 TM 등을 3월말까지 중단하는 강경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일부 언론에서 "카드사에서 유출된 정보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 금융위가 반나절 만에 유통 차단 조치를 내놓아 '졸속'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후에도 TM은 불법으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이용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가정을 바탕으로, 대부분이 실적급을 받는 텔레마케터의 생계수단을 정부가 빼앗았다는 비난 여론도 비등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열린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와의 기자회견에서 "TM영업 중단은 법적 근거 없는 폭력적인 관치금융이며 TM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은 금융당국의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금융당국이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금융당국 수장들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다. 김현정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위원장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금융의 공공성과 안정성을 도외시해 온 금융당국에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는 금융감독당국의 책임이 가장 큰 데도 지금까지 책임지는 이가 없다"며 현오석 부총리를 비롯해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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