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냉방기기로 국한됐던 에어컨은 더위를 식혀주는 냉방 기능은 물론이고 공기청정, 가습 등 항상 필요한 기능을 추가하며 사계절 가전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에 새로운 기능이 하나 추가됐다. 바로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힐링'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와 LG전자, 에어컨 맞수가 뽑아 든 카드는 '소리'다. 즉 시원한 바람이 나올 때 자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소리를 덧입혀 마음을 안정시켜 주려는 것. 재미있는 것은 양 사가 신형 에어컨에서 추구하는 바람 소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두 회사의 에어컨 소리를 책임진 '소리 감독'들을 만나 소리의 비결과 차이를 들어 봤다.
삼성전자"과학이 바탕이 된 휴식" 전국의 산ㆍ계곡ㆍ바다서 '자연의 소리'만 채집제주 새소리 등 조합 알파파 생성 소리 완성
삼성전자는 폭포 소리, 계곡 물소리 등 자연에서 소리의 해답을 구했다. 조은영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은 신형 '스마트 에어컨 Q9000'에 들어간 바람 소리의 특징을 '과학을 바탕으로 한 휴식'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의 몸이 긴장을 풀고 휴식할 때 뇌에서 발생하는 알파파를 최대한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귀로는 한여름 시원하게 부는 산들바람 소리를 듣는 것처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 연구팀은 2년 전부터 성균관대 연구팀과 함께 전국의 산, 계곡, 바다를 누비며 물, 바람, 새 소리 등 수십 가지 자연의 소리를 채집했다. 김태덕 수석연구원은 "국내서 손꼽히는 인간공학 전문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세진 박사팀에 의뢰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뇌파 측정 등 여러 차례 정밀 테스트를 거쳤다"며 "가장 많은 알파파를 만들어 내는 제주 사려니 숲길 새소리, 강원 고성 화진포 앞바다 파도 소리, 강원 인제 설악산 용대리 계곡 물소리 등 세 가지를 골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역시 바람 좋다는 곳을 찾아 다니며 속도와 기류 패턴을 연구한 끝에 가장 편안하다고 결론 내린 한계령 바람에 세 가지 소리를 입힌 '휴(休) 바람' 기능을 만들었다. 김 수석은 "최고의 바람과 최고의 소리를 찾았지만 원래 짝이 아니었던 터라 처음에는 소리가 잘 맞지 않았다"며 "몇 달에 걸쳐 소리를 맞추는(튜닝)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창섭 삼성전자 전략마케팅 부장은 "최종 점검을 위해 연구팀 등 관계자들이 에어컨을 틀고 소리를 듣다가 깜빡 잠이 들곤 했다"며 "휴바람 기능을 사용하면 평소보다 알파파가 20~30% 더 나온다"고 말했다.
LG전자'피아노+풍경' 소리 조합 바람세기ㆍ기능에 따라 박자도 달리 표현해 내라벤다ㆍ레몬향 더해 후각의 만족감까지
LG전자는 심신을 안정시켜 줄 에어컨 바람의 소리를 악기에서 찾았다. 이지숙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주임연구원은 에어컨에 넣을 바람 소리를 찾기 위해 1년 넘게 고심했다. 그러던 지난해 7월 공동작업을 하던 사운드 디자이너가 "애니메이션 배경 음악에 종종 쓰이는 마림바와 비브라폰 소리가 편안함을 준다"는 조언을 했다.
이 연구원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들으며 '바람 여행'이라는 주제를 생각했다. 그는 "눈을 감고 영화 속 마림바, 비브라폰 소리를 듣자니 자연 속에서 편안히 여행하는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곧장 서울 낙원동 악기상가로 달려가 마림바와 비브라폰 소리를 듣고 악기상 들에게 소리에 대한 자문을 했다. 그러나 막상 에어컨 바람과 함께 두 악기 소리를 들었더니, 영화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고 어색했다.
결국 사운드 디자이너들과 20~60대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 백 가지 소리에 대한 시험을 거쳐 처마 끝에 달린 풍경과 피아노 연주를 조합한 소리를 찾았다.
힘들게 찾아낸 소리는 신형 에어컨 '휘센 크라운 프리미엄'에 적용됐다. 전원을 켜면 환영의 의미로 밝고 경쾌한 10초짜리 음악이 흘러 나오고, 전원을 끄면 아쉬움을 담은 음악과 함께 작동을 멈춘다. 또 쿨 파워, 공기 청정 등 바람 세기와 기능에 따라 각각 다른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이 연구원은 "에어컨을 켤 때부터 끌 때까지 과정을 여행으로 보고 소리를 통해 바람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편안함을 주려 했다"며 "특히 바람이 나오면서 라벤다향, 레몬향이 함께 나오는데, 이 향기와 어울리는 20초짜리 음악을 세가지 만들어 청각과 후각을 모두 만족시키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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