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3국이 다시 역사 논쟁의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식민주의, 청일전쟁과 중일전쟁, 군 위안부와 남경학살 등 동아시아 근대사에 누적되고 구조화된 갈등의 역사가 구조적 요인이지만, 논쟁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것은 지난 세밑 일본 총리 아베의 공식적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였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에도 말 막부의 개국부터 메이지 유신을 거쳐 일본 제국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근대 국가가 벌인 여러 전쟁에서 전사한 246만이 넘는 군인들의 명부(冥簿)가 보관돼 있다. 문제의 발단은 1978년 일본 정부가 A급 전범 14명의 이름을 슬그머니 그 명부에 끼워 놓은 데 있다. 그것은 조국을 위해 죽어간 모든 이들을 추모한다는 명분 아래, 전범들에 게 역사적 사면령을 내린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일본국 총리와 내각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가 전쟁 및 식민주의적 범죄 행위의 원흉인 전범들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애도하고 추모한다는 의미를 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중국과 한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피해자들에게 그것은 어떤 이유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문제 삼는 것도 야스쿠니 자체가 아니라 야스쿠니가 기리는 추모대상 전몰자 명부에 이들 전범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범의 명단을 야스쿠니 추모자 명부에서 빼거나 순수한 전사자들을 기리는 별도의 국립추모시설을 만들라는 요구가 심심찮게 일본 안팎에서 대안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런 대안들은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아픈 과거와 대면하는 동아시아 공동의 기억이 한 걸음 더 진전하기 위해서는 '야스쿠니' 자체를 문제시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일본의 야스쿠니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의 혹은 북한의 혹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 있는 복수의 '야스쿠니들'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제기가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에 대한 비판과 같이 갈 때,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더 근원적인 비판이 가능한 것이다.

야스쿠니는 한자어로 '정국(靖國)'이라 쓴다. 서울의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독립 운동가이자 3대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이 휘호를 쓴 '정국교'가 있고, 중국 사천성의 쿤밍시에는 '정국로', '정국소학교' 등이 있다. 에서 '나라를 안정시킨다'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고 중국의 백과사전은 전한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야스쿠니'로 읽히고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정국교의 '정국'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자의 숭배의식과 결합됨으로써 의 그것과는 의미를 달리한다. 중국의 고전보다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징집된 병사들의 죽음을 숭고한 희생으로 성화시켜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주의의 전사로 젊은이들을 기르는 서구 국민국가의 논리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야스쿠니 정신은 "국가를 위해서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피를 흘려라"는 한 마디로 요약되고, 야스쿠니 신사라는 기억의 장은 외아들이나 사랑하는 남편과 애인의 전사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뻐하는 황국신민을 만들어내는 일본 제국의 국민 교육장이었던 것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서 발전된 야스쿠니의 전사자 숭배의식이야말로 국가를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종교의 가장 모범적인 예라며 본받자고 역설한 이탈리아 파시스트 코라디니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야스쿠니가 위험한 것은 A급 전범 14명의 이름이 추모대상인 전사자 명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스쿠니가 정말 위험한 것은, 과거의 전쟁을 기억하는 데 특정한 코드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이상 헛되고 무의미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강요하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평화를 향한 기억이 아니라,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지 기꺼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전쟁을 향한 기억이기 십상이다.

야스쿠니가 주는 교훈은 공동체를 지키려는 결의와 국가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스쿠니 비판을 넘어서, 무의미한 죽음을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시키는 정치신학의 예배당이 한국사회에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ㆍ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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