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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2월 5일] 각자의 레시피

입력
2014.02.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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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기 전에 매생이굴떡국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식당에서 몇 번 먹어보았을 뿐 매생이는 다뤄본 적이 없는 식재료라 인터넷에 뜨는 요리 달인들의 조리법을 찬찬히 살폈다. 처음엔 그대로 따를 요량이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중요한 포인트만 숙지하고 내 식대로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아무리 꼼꼼히 정리된 레시피라도 나에게 고스란히 적용될 수는 없으니까. 한 컵 분량이라 해도 집집마다 컵의 크기가 다르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5분을 끓여도 화력이 또한 집집마다 다르다. 갖춰놓은 보조 재료도 일정치가 않다. 어떻게 해도 같은 맛을 낼 수는 없다. 가끔은 식탁에 올린 나의 음식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손이 느리고 솜씨가 빤하니 썩 맛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이다. 정성을 쏟지 않고 대강대강 만드니 만들 때마다 맛이 달라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순간의 식탁에만 존재하는 맛이기도 하다. 단 한 번만 가능한 음식이 이 세상에 나왔다가 사람의 입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의 요리에는 국물이 필요하다. 멸치 한 움큼과 다시마와 무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맹물도 오래 끓이면 맛이 좋아진다 하니 얼추 오래 끓인다. 씻어놓은 굴을 넣고 참기름과 다진 마늘을 넣고 다시 한참 끓이다 떡을 넣은 후 간을 맞춘다. 풀어지기 쉬운 매생이는 마지막이다. 불을 끄고 맛을 본다. 오늘의 매생이굴떡국에서도 내 맛이 난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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