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처럼 올 한해 '대박' 나라고 말하지 않겠다. 한 사람의 '대박'은 다른 이의 '쪽박'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인 박노해가 사진전으로 돌아왔다. 1980년대 시집 으로 노동운동의 한 가운데 섰던 그가 98년 출소 후 사진작가로 변신한 이래 네 번째 여는 사진전이다. 5일부터 3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 지하 1층에서 열리는 '다른 길' 전에는 시인이 지난 3년간 아시아 오지 마을을 떠돌며 촬영한 흑백 사진 7만컷 중 120여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올해는 이 출간된 지 딱 30년 되는 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로 시작하는 그의 시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희생됐던 노동자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30년이 지난 뒤 탱크는 사라지고 소주의 도수도 낮아졌지만 자본의 횡포는 오히려 더 교묘해지고 악랄해졌다. 약자가 착취당하는 현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지금, 한때의 민주투사가 아시아의 오지 마을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아시아를 "희망의 종자가 가장 풍부하게 남겨진 순수한 땅"이라고 불렀다. 서구발 '성장과 진보'의 세계관이 전 지구를 한계상황으로 내몬 지금, 아시아 각지의 토착민들에게서 발견한 삶의 원리가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란 얘기다. 그가 찾아 다닌 곳은 티베트, 파키스탄,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인도의 전통 마을이다. 인도네시아의 가파른 비탈 밭을 일구는 여인, 미얀마의 인레 호수에서 조각배에 몸을 의지해 고기를 잡는 어부, 손수 지은 흙집에서 전통 차를 끓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파키스탄 가족이 시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인도네시아 농촌에서 만난 여인은 자신의 아이가 농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건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티베트 초원에서는 석 달마다 거주지를 바꿔 이동하는 천막족을 만났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데도 모든 이들이 석 달의 원칙을 지키는 이유는 초원을 지키기 위해서다. "누구든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 초원은 황폐한 사막이 되고 말지요. 우리 모두는 영원한 거처를 지은 자가 아니라 이 땅에 한 시절 천막을 친 자들이니까요."
한 사람의 대박을 위해 다른 이들이 쪽박 차는 것이 당연한 세계에서 온 그의 눈에, 모두를 위해 자기의 것을 내려놓는 이들의 삶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시인은 "희망의 종자를 채취하듯이 사진을 찍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험난한 곳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위대한 삶을 나누고 싶었다"며 "그들은 내 안에 처음부터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전시와 함께 발간된 사진 에세이 에서는 시인이 직접 쓴 사진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볼 수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이동하 인턴기자(이화여대 행정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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