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달 28~29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100억달러 추가 테이퍼링(자산매입규모 축소)을 결정한 데는 미국 경기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깔려있다. 아르헨티나, 터키 등에서 비롯된 신흥국 위기가 미국 경기 회복에 브레이크를 걸지는 못할 거라는, 또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행보에는 큰 영향이 없을 거라는 판단인 셈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중국의 경기 지표 악화에 이어 미국의 제조업지수가 전망치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나자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증시들도 일제히 급락세로 돌아섰다. 신흥국 위기에 더해 미국과 중국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을 친 것이다. 특히 일본 닛케이지수는 이날 4% 넘는 급락세를 보이며 시장 불안을 증폭시켰다. 뉴욕타임스(NYT)는 "시장 전망치(56.0)에 크게 못 미치는 미국 제조업지수(51.3) 결과가 투자자들로 하여금 미국 경제 회복세를 너무 낙관적으로 전망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신흥국 위기가 동유럽을 거쳐 나아가 선진국까지 전이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미국과 중국 등의 경기 둔화가 신흥국 위기와 맞물린다면 그 파급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동유럽의 헝가리, 폴란드는 물론이고 선진국인 캐나다와 노르웨이 통화까지 최근 약세를 보이는 것도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요인. 실제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3일(현지시간) 하룻동안 16.5% 치솟으며 작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장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우선 미 증시 급락은 그간 주가가 많이 오른 데 따른 조정국면의 성격이 강할 뿐, 미국 경제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지훈 키움자산운용본부장은 "미국 시장의 급락은 그간 많이 오른 데 따른 차익 실현 욕구가 커졌기 때문일 뿐"이라고 진단했고, 윤지호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장은 "90년대 달러화 강세 시기에도 국가별 펀더멘털 차이에 따른 디커플링 현상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이 단기간에 진정되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가뜩이나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서 곳곳에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유럽은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지면서 또 다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커지고 있고, 일본은 4월 소비세 인상에 따른 후폭풍도 예고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는 점점 커지는 양상. 금융연구원 박성욱 실장은 "신흥국 위기가 선진국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여러 변수들과 복합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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