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32)씨는 지난해 12월 초 잃어버린 선불 충전식 카드의 미사용 잔액을 돌려받으려고 카드사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카드를 등록하면서 카드번호와 개인정보를 등록했기 때문에 당연히 환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카드사는 '도난ㆍ분실된 카드에 충전된 금액은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약관 규정을 들어 "현금을 잃어버린 것과 동일하게 처리된다"며 A씨의 요구를 거부했다. A씨는 "개인정보를 등록했고, 전산으로 잔액을 조회할 수 있는데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돈이 카드사의 수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화가 났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처럼 분실한 선불 충전식 카드(일명 기프트 카드)의 잔액이 소유자가 아닌 카드사로 돌아가고 있다. 규모는 매년 수십억원에 달한다.
3일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선불카드 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가 분실한 선불카드 잔액이 13개 카드 발급 금융사의 수익으로 처리된 금액은 지난해 63억400여만원에 이른다. 이런 카드사의 '낙전(落錢) 소득'은 2009년 5억6,400만원에서 2010년 26억7,100만원, 2012년 53억9,300만원 등 5년 새 10배 이상 급증했다.
2002년 처음 출시된 선불카드는 상품권처럼 선물로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13개 카드사에서만 1조704억원이 팔리는 등 매년 1조원 넘게 유통되고 있다. 교통카드뿐 아니라 최근 들어 커피 등 소비재 판매업체에서도 이런 선불카드를 속속 내놓고 있어 실제 시장 규모는 훨씬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카드사들이 소비자의 쌈짓돈을 수익금으로 챙기는 것은 주로 무기명 선불카드를 통해서다. 소유자의 이름이 적힌 선불카드는 분실신고 후 재발급을 신청하면 신고 당시 잔액으로 채워 다시 발급해준다. 그러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기명 선불카드는 분실하면 자신의 소유였음을 증명하기 까다롭다. 소유권을 증명하는 '공시최고'를 관보에 공고한 지 3개월 경과 후 분실한 카드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제권판결'을 거쳐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친 후에야 잔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잃어버린 카드의 잔액은 카드 최종 사용일로부터 5년이 지나면 발행 카드사로 소유권이 넘어간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무기명 카드는 소득공제 신청이나 인터넷 사용 등록을 해도 타인에게 넘겨줄 수 있어 실제 소유자를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환불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무기명 카드는 현행법상 상품권이나 현금과 같다고 간주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분실 카드의 잔액을 소유자에게 돌려줄 수 없더라도 카드사들이 갖게 할 것이 아니라 사회 환원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2012년 서울시가 유효기간을 넘겨 사용하지 않은 선불식 교통카드 잔액을 기부하거나 공익재단 설립에 사용하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취지에 따른 것이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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