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외국인들이 남긴 조선인의 대식(大食) 습관에 관한 기록들은 좀처럼 믿기 어렵다. 프랑스인 선교사 마리 다블뤼는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식사량은 1ℓ의 쌀밥으로, 아주 큰 사발을 꽉 채운다. 양반이나 평민이나 2, 3인분 이상을 쉽게 먹어 치운다. 정말 대식가들이다"고 했다. 1890년대 한양을 찾은 영국인 여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 역시 "조선 사람들은 한 사람이 3, 4인분을 먹어 치우고, 3, 4명이 앉으면 20~25개의 복숭아와 참외가 없어지는 것이 다반사"라고 적었다.
■ 주린 만큼, 먹을 게 닥치면 으레 양껏 먹어두려는 모습이 외국인들의 눈엔 탐욕스럽게 비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정황과는 별도로, 우리 선조들의 한끼 밥의 분량이 예전부터 엄청났던 건 분명하다. 이미 임진왜란 피란기 에 당시 성인 남자가 한끼에 7홉이 넘는 양의 쌀을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으로 치면 전기밥솥 계량컵 3개 분량, 약 500㏄에 해당하는 양이다. 사료를 뒤질 것 없이, 당장 민속박물관의 어린이 머리 크기만한 옛날 밥주발만 봐도 당시의 양이 충분히 짐작될 정도다.
■ 옛날 밥의 양이 엄청났던 건, 달리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육류 소비가 어려웠던 전통 농경사회에서 주식은 당연히 알곡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쌀의 단백질 함유량은 밀의 절반 수준밖에 안되다 보니, 선조들은 소금국에라도 쌀밥을 더욱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인은 밥 심'이라는 말의 뿌리도 따져보면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 하지만 쌀이 우리의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백미가 전체 식사에서 공급하는 에너지 비중은 1998년 42%에서 2012년엔 31.6%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국민 한 명이 하루에 섭취하는 밥의 양도 쌀로 치면 169.8g으로 두 공기도 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식이 풍족해진 결과일 텐데, 이러다간 흰쌀밥에 된장국이 코스요리의 맛보기 단품 정도로 취급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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