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 유럽을 넘어 전 인류가 공유하는 기호품이 됐다. 그러다 20세기 중반부터 담배가 인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담배 소송이 제기됐다. 국내에서도 1999년 흡연자들이 담배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낸 후 현재까지 4건의 소송이 진행됐으나 하급심에서 모두 패소한 상태다.
최근 공공기관 최초로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공단 이사회는 재정 누수방지 차원에서 흡연으로 인한 진료비용 환수를 위한 최대 3,000억 원대 담배소송 안건을 지난달 24일 의결했다. 이에 따라 공단은 조만간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공단이 제소 결정을 내린 것은 무엇보다 흡연이 질병 위험도를 높인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한 보건대학원과 공동으로 건보 가입자 130만 명을 대상으로 19년간 추적 분석한 결과, 흡연 남성의 암발병률은 비흡연자보다 3~6배까지 높다고 한다. 그로 인해 공단이 지급한 진료비는 1조 7,000억원 정도로 2011년 전체의 3.7% 수준이다. 또 폐암이 흡연에 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본 서울고법(항소심)의 판단도 공단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공단의 승소 가능성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만일 공단이 보유한 자료를 통해 환자들의 폐암 발생과 흡연의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고, 담배회사들의 위법행위를 입증한다면 승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조인으로서 개인적 견해로는 현재 사법 제도상 그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우선 공단이 제시한 소위 '빅데이터'에 문제가 있다. 이 데이터의 연구대상 표본이 공무원, 교직원 일부로 국한되어 전 국민을 대표할 수 없고, 조사방법도 문진으로만 이루어져 개인 병력, 식습관, 공해노출, 스트레스 등 잠재 위험요소와 흡연량, 흡연기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어서 통계로서 결함이 크다.
소송당사자도 문제가 있다. 국내 담배소송 항소심은 흡연과 소세포암(폐암) 및 편평세포암(후두암)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추정하면서 전제조건을 붙였다. 바로 30년 이상의 흡연경력이다. 공단은 소송상대방(피고)을 담배회사로 한정했지만, 불과 12년 전까지도 국가기관이 담배를 판매했다. 이번 소송의 피고 지위에서 국가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그러면 정부 산하기관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결과가 된다.
이 같은 점을 의식해서인지 공단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더 신중히 처리할 것을 주문하며 공단의 행보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도 말을 아끼고 있다.
공단은 또한 미국과 캐나다에서 승소 사례가 있다지만, 엄밀히 보면 사실과 다르다. 미국정부와 담배회사들은 25년간 총 2,060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것이지, 담배회사가 패소해서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후 담배회사들은 합의금 마련을 위해 담배가격을 인상했고,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캐나다 역시 의료비 반환 청구소송이 진행 중으로 아직 결론이 난 상황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단이 승소하려면 흡연과 폐암 발생의 인과관계 이외에 피고의 위법행위(고의 또는 과실, 위법성)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 담배 소송에서 개별 피해자마다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고, 담배회사와 국가의 위법행위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일구조인 공단의 소송 역시 승소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공단의 주장처럼 결과발생에 기여한 모든 조건을 동등하게 원인으로 인정한다면, 자동차나 주류 회사들도 사상이나 질병 발생에 대한 손해를 배상해야 할 것이다. 공단은 공익을 위해 이번 소송을 진행한다지만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아 행여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만일 소송의 목적이 미래 건보 재정위기에 대한 재원 마련이라면, 먼저 현재 담배에 부과되는 연간 1조 6,000억 원의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제대로 활용할 방안에 대해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필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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