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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4일] 설날 민심이란 이런 것

입력
2014.02.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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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에 고향에 들렀다가 오랜만에 동창생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각기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곳마저 제각각이니 예전처럼 마냥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진 않았다.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는 친구가 원격 진료에 대한 장단점을 이야기할 때, 나는 멀거니 호프집 벽면에 매달린 TV를 쳐다봤고, 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한 친구가 교학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 안주로 나온 북어포를 팡팡 탁자에 쳐대며 열변을 토할 때, 다른 두 명의 친구들은 슬그머니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렇게 맨송맨송 이어지던 대화는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다가올 지방 선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핵심은 이런 것이었다. 현행 '시‧도지사 3선 연임 제한'이 과연 제대로 된 시스템인가? 공무원인 친구는 그런 시스템이야말로 국민을 우습게 보는 대표적인 그릇된 제도라는 말을 했다. 어차피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잘못은 그 지역 사람들의 선택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아직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사업들이 많은데 제도로 인해 출마조차 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것이 친구의 요지였다. 하지만 친구의 그 말은 일부분에선 동의를 얻었지만, 더 많은 부분에선 그렇지 못했다. 연임 제한이 국민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은 맞지만,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진 배경을 생각한다면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무래도 고인 물은 썩지 않겠느냐, 뭐 이런 말도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친구는 이런저런 사업의 완결성 측면을 꺼내면서 계속 연임 제한 부당성에 대한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십이 년을 계속 했는데도 못한 사업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세월이 하는 것"이라는 말로 그 의견을 반박했다. 꼭 그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정말로 위험한 생각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말이 반복적으로 친구들에게 묵살당한 공무원 친구는 한동안 화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다가 불쑥 이런 말을 꺼내 들었다. "그럼,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은 왜 3선 연임 제한 같은 게 없는데? 너희들 말대로라면 국회의원도 당연히 그런 제한을 두는 게 맞지 않아?" 친구의 말에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그래도 입법 기능은 조금 다르지 않나?"라고 말을 꺼냈다가 이내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우리는 다선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위해 더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친다거나, 4선 5선 국회의원들이 더 개혁적이고 더 참신한 정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본 모습은 계파를 만들거나,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각축하는 모습뿐이었다. 언론에서 발표하는 우수 의원들 역시 대부분 초선 의원들이니, 다선의 경력이 입법 활동에 필요충분조건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공무원 친구의 그 의견에 대해선 모두 한 목소리로 찬동했다. 국회의원 3선 연임 제한 청원 운동이라도 벌이자, 우리는 그런 말도 나누었다. 도대체 누굴 위한 최다선 운운이란 말인가.

친구들과 헤어져 비틀비틀 혼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도 또 설 연휴가 지나면 언론에선 정치인들이 전하는 설 민심 이야기를 내보낼 것이다. 그 중 대부분은 이런 것이리라. 제발 싸우지들 말고 경제에 집중해라. 우리는 그런 헛소리들을 벌써 수십 년 넘게 들어왔다. 그 말 속엔 정치인들이 싸우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좋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리라. 정치인들이 싸우지만 않는다면 다 좋아질 것이라는 말. 하지만, 내가 느끼는 민심은 그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싸우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해마다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와의 싸움을 회피하기 때문에 자꾸 경제 핑계를 대고 있다는 생각. 나는 그들이 스스로와 스스로를 둘러싼 제도들과 더 격렬하게 싸우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느낀 민심이었다.

이기호 소설가ㆍ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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