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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마침내 둥지 틀다 비록 방 한 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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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마침내 둥지 틀다 비록 방 한 칸일지라도…

입력
2014.02.0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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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국의 아마추어 사진 인구가 1,000만명을 넘었다는 통계가 발표됐었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작은 자동카메라인 '똑딱이'와 스마트폰에 딸린 카메라까지 포함하면 거의 전국민이 사진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연예인을 마주쳤을 때, 도심 한복판에 쌍무지개가 떴을 때, 지하철에서 흥미진진한 싸움판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너나 없이 자동반사처럼 셔터를 누른다. 이렇게 찍힌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져 몇 초짜리 웃음과 감탄을 자아낸 뒤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사진을 시각 언어라고 한다면 최근 넘쳐나는 사진들은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사진 전문 갤러리 류가헌이 국내 첫 사진책 전문 도서관을 열었다. 지난달 20일 문을 연 이 곳은 도서관이라 하기도 뭐할 만큼 손바닥만한 방 한 칸에, 서가 3개에 꽂힌 1,200여권의 도서가 전부다. 그러나 이만한 규모의 공간조차 시도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필터와 렌즈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사진책을 보는 데는 인색한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은 사진책 도서관이 "부끄러움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는 몇 년 전 뉴욕에 사는 한 사진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뉴욕의 사진 관계자들이 한국에 가면서 "한국 사진가들의 사진집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대형 서점 외엔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어 류가헌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당시 도서관의 모양새를 갖추지 못한 류가헌은 겨우 책꽂이 하나 분량의 도서 앞으로 손님들을 안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한국 대표 사진가의 사진책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사진가들과 사진전문출판사들이 힘을 합쳤다. 1970년대 농촌의 모습을 기록한 김녕만의 , 강원도 너와집을 찍은 안승일의 , 전국 각지의 굿하는 장면을 포착한 김수남의 사진집 등 지금은 절판됐거나 애초에 유통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희귀 도서들이 기증을 통해 모였다. 사진전문출판사 눈빛은 25년 동안 출판해온 사진책 대부분을 냈고 열화당과 사진예술도 가세했다. 작품집을 중심으로 사진 에세이와 사진 이론서, 사진 비평서 등이 알차게 모였다.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알려주는 책은 배제했어요. 사진을 카메라, 즉 기계로 접근하기 보다 글과 생각으로 다가가기 위한 공간이에요."

도서관 방 옆 방에서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개관에 맞춰 준비한 '사진가의 서재'는 한 사진가의 정신이 형성되기까지 책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추적한다는 취지로 사진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구성을 취했다. 벽에는 작가가 찍은 사진을 걸고 서가에는 실제 그의 서재에서 뽑아온 책을 꽂았다. 작가는 두 달마다 바뀌는데 처음 선정된 이는 원로 사진가 육명심 씨다. 서정주, 박목월, 중광스님 등 예술가의 초상 사진으로 유명한 그의 서가에는 성철스님 범어집과 한국대표시인 100인선집 등이 꽂혀 있다.

노 작가는 젊은 시절 시와 종교에 심취하며 겪었던 정신적 편력이 지금까지 감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단순히 셔터를 찰칵 누르는 행위가 아닙니다. 사진은 언어이고, 언어는 곧 사고활동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없으면 자기만의 사진도 없습니다. 오늘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언어의 한계가 곧 사고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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