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동계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형세(形勢)가 예사롭지 않다.
형세의 출처는 손자병법이다. 형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갖춰야 할 물적토대를 뜻하고, 세는 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말한다. 21세기식으로 바꿔 말하면 형은 하드웨어, 세는 에너지다.
한국선수단은 우선 형, 규모 면에서 사상 최대의 대표팀 71명(남41ㆍ여30)을 출전시켰다. 이에 따라 세도 자연스레 업그레이드 됐다. 특히 한국은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불모지’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세계 정상에 오른 경험이 있어 한결 여유로운 발걸음이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경기를)즐기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경기력을 위축시킬 수 있는 불필요한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공통 기업분석 틀 ‘SWOT’를 적용해 한국선수단의 형세를 보다 구체적으로 짚어봤다.
▲강점(Strength)
경험과 자신감이다.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니라, 팩트(사실ㆍFact)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다. 말이 아니라, 기록이 말해준다. 김연아(24ㆍ올댓 스포츠)와 이상화(25ㆍ서울시청), 심석희(17ㆍ세화여고)가 대표 주자다. ‘기본’으로 금메달 3개쯤은 따고 들어가는 셈이다. 모태범(25ㆍ대한항공)은 또 어떤가. 그는 지난해 3월 소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종별 세계선수권 500m 금메달을 차지한 데 이어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3~14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 대회 2차 레이스에선 500m와 1,000m를 석권했다. 세계 최강 ‘흑색탄환’ 샤니 데이비스(32ㆍ미국)를 앞에 두고서다.
▲약점(Weakness)
손자(孫子)는 병법 허실(虛實)편에서 ‘승리를 위한다면 자신은 감추고 적은 밖으로 드러나게 하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떼어 논 당상’처럼 보였던 금메달 후보들의 강점은 고스란히 약점으로 되돌아온다. 특히 김연아의 피겨는 심판들의 주관에 의한 점수 배정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김연아는 더구나 밴쿠버때의 테크닉을 변함없이 꺼내 들었다. 반면 아사다 마오(24ㆍ일본)는 ‘타도 김연아’를 위해 주특기 트리플 악셀을 더욱 정밀하게 가다듬고 있다. 손자는 한번 노출된 전략과 전술로는 두 번의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회(Opportunity)
한국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23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쇼트트랙 19개, 스피드 3개, 피겨 1개다. 모두 빙상종목이다. 스키, 바이애슬론 등 설상종목에선 메달은커녕 톱10 진입조차 없었다. 이번 대회는 7개 종목(15개 세부종목)에 총 98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밴쿠버 때보다 설상에서 12개의 금메달이 추가됐다. 취약 종목이지만 한국으로선 오히려 기회인 측면도 있다. 실제 스노보드 김호준(24ㆍCJ)과 모굴 스키 최재우(20ㆍ한국체대)는 소치에서 톱10을 넘어, 메달권을 바라볼 수 있는 기량 향상을 보이고 있다. 소치올림픽 상위권 발판 후 2018년 안방 평창 ‘대박’은 이들의 몫이 될 수 있다.
▲위협(Threat)
소치에서 한국의 목표는 금메달 4개 이상, 톱10 유지다. 2006년 토리노(금 6개ㆍ종합 7위), 2010년 밴쿠버(금 6개ㆍ종합 5위)대회보다 눈높이를 낮췄다. 이유는 설상종목 12개가 늘어난 까닭이다. 위협요인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뒤집어 해석하면 위협은 곧 기회다. 문제는 리더십이다. 경희대 김도균(50) 교수는 “가능성 제로(0)의 종목에서도 선수를 발굴하는 안목과 지도력에 따라 100%의 가능성 블루오션이 창출될 수 있다”며 “김연아가 바로 그 증거”라고 말했다.
소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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