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차 달러 흡수(테이퍼링)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예상됐던 만큼 미국발 양적완화 축소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낙관론이 있는 반면, 테이퍼링이 신흥국은 물론 전세계에 충격파를 전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금융당국도 "양적완화 축소 파장이 예상보다 크게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신흥국발(發) 2차 충격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끝에 100억달러 규모의 2차 테이퍼링을 결정했다. 작년 12월에도 자산매입으로 시중에 푸는 자금을 월간 850억달러에서 750억달러로 줄였던 FRB는 6주 만에 다시 테이퍼링을 결정하면서 매입 규모를 650억달러 수준으로 줄이게 됐다.
FRB의 추가 테이퍼링은 미국 경기가 개선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반영한데다, 출구전략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골드만삭스는 "경기부진 등의 요인이 없는 이상 FRB는 10월께 자산매입을 종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FRB가 출구전략의 잠재 위험요소로 거론되는 신흥국의 시장 불안 가능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은 주목해야 할 대목. 최근 신흥국 통화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FRB가 의사결정에 이를 반영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기대가 있었지만 미국은 자국에 끼칠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판단에 '마이 웨이'를 택했고, 위기 관리 책임은 신흥국에 떠넘겼다.
시티그룹은 "FRB의 관심사는 미국 경제이며 이번 결정은 신흥시장과 '작별인사'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일부 신흥국은 기초체력과 정책 신뢰성을 개선할 수 있는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며 "부채를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등 경쟁력을 키우라"고 신흥국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번 위기가 1990년대 신흥시장에서 발생한 외환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2차 테이퍼링 조치 이후 즉각 동유럽 국가에서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주요 국가들의 통화는 지난달 29~30일 일제히 약세를 기록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신흥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년대보다 훨씬 커진 만큼 신흥시장 위기가 터지면 세계 경제에 더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우려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우리나라도 작년 기준 수출액의 41%가 10개 신흥국에 쏠려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신흥국발 위기 전염은 경계 대상으로 꼽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일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합동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신흥국의 금융위기에 따른 2차 충격 전염 가능성이 있어 한국 경제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가계부채 연착륙 ▲일부 문제기업 부실, 시장 전반으로 확산 방지 ▲기업 자금시장의 양극화 해소 ▲양호한 외화건전성 기조 유지 등으로 외부 충격을 사전에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