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66)은 "선생님은 왜 시를 썼어요?"라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심심해서 그랬어. 정말 심심해서 그랬어." 시골에 있으면 나무도 강물도 하늘도 구름도 풀잎들도 다 심심해 보여 심심함을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단다. 마을에 있는 것들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하니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들을 버리기가 아까워 글을 옮겼더니 시가 됐다는 것이다.
시인은 최근 펴낸 에세이 (예담)에서 우리의 일상이 곧 예술이고 우리 자신이 곧 예술이라고 말한다. 예순다섯 해를 살고 서른 해 넘게 시를 쓰면서 체득한 일상 예찬론이 맑고 고운 시어처럼 굽이굽이 흐른다. 심심해서 자세히 바라본 일상의 모든 것이 곧 시가 되듯, 그는 일상이 예술임을 깨닫기 위해선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밥통 속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밥그릇에 담겨 나오는 흰 쌀밥을 보면서 "우와! 예술이다, 예술!"이라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밥을 짓는 것이 곧 시를 쓰는 것과 같고, 괭이질과 호미질로 밭을 일구는 것이 그림 그리는 것과 다름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시의 시작은 자연과 나누는 무언의 대화다. 초등학교 교사로 오랜 기간 일하다 퇴임한 시인은 아이들과 글쓰기를 할 때 자신이 가장 자주 보는 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라고 했단다.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게' 되면 놀랍게도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것이 시인이 아이들에게 알려준 글쓰기의 방법이고 자신만의 교육 철학이다.
그림은 그가 시만큼이나 사랑하는 예술이다. 에세이 곳곳에 그림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말로 시를 쓰고 말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시인은 화가 장욱진과 백준기에 찬사를 보낸다. 장욱진의 그림을 보며 "아름답고도 깨끗한 가난을 배운다"고 말하고, 여든다섯 해를 살아낸 백준기의 삶에서 '소심함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의 집착을 뿌리치는 모험심'으로 가득한 청춘을 발견한다.
시인의 눈엔 앓고 있는 세상이 걱정스럽다. 자기 편이 아니면 다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망할 놈의 분단 68년"이 걱정스럽고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곳곳의 순환 고리를 차단하고 자르고 버리"는 현대사회가 근심스러우며 "돈을 많이 벌어보자는 시간에게 우리들은 우리들의 '이 하찮은 가치'들을 빼앗겨버린 것"이 한탄스럽다. 해법은 결국 '이 하찮은 가치', 그러니까 일상의 사소한 행위들의 가치를 되찾는 것이다. 시인은 "사는 일, 지금 당신이 바라보고 하고 있는 모든 삶의 행위가 다 예술"이라며 "그 작은 풀꽃 한 송이의 감동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고 조용히 웅변한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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