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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014년 급변사태

입력
2014.02.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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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급변사태 얘기가 유행이다. 장성택 처형이 북한 정권의 불안 신호로 해석되면서다. 워싱턴도 다를 바 없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지난 달 다녀간 뒤로 이에 대한 직간접적인 언급이 늘고 있다.

급변사태는 북한 정세가 혼미할 때면 등장했다. 북한의 불안정한 상황과 정권 붕괴가 가져올 위험성 때문이다. 다만, 그 동안 급변사태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건 금기였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점이 감안된 것인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다. 그럴 만큼 지금 북한 정권이 위험하다고 보는 분위기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한미 외교장관이 북한 정세평가를 더 심도 있게 하자고 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미 국무부의 장관, 부장관, 동아태차관보,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이 잇달아 동아시아를 방문했거나 방문을 계획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급변사태 논의가 번지는 배경에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깊은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새뮤얼 라클리어 태평양군 사령관의 발언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지난달 말 기자회견에서 그는 "김정은이 이성적 의사결정을 할 상태에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미국 당국자가, 그것도 한반도 유사시 군사책임자가 북한 지도자의 정신건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2014년 북한을 둘러싼 이 같은 움직임은 여러 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쓰러진 이듬해인 2009년 상황과 유사하다. 그 해 북한은 유엔이 장거리미사일로 규정한 소형 인공위성 발사체 시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추방, 2차 핵실험 강행, 우라늄농축 발표, 핵 연료봉 8,000개 재처리, 대청해전 등을 일으켰다.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던 당시 미국 외교와 국방 라인은 은밀하게 중국에 북한 급변사태 논의를 제안한 것으로 최근 밝혀지고 있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 배경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에 따른 권력승계 문제라는 해석과 맞물린 대응이었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회고록 에서 쉬차이허우 중국 군사위 부주석을 만나 "북한이 붕괴할 경우 핵무기와 핵물질 처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게 미중의 상호이익"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소개했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역시 중국에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고 미 의회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이와 별도로 북한 붕괴에 따른 급변사태 대비 계획을 검토했다. 그 3년 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사실에 비추면 북한의 위기조성이 권력승계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고 본 당시의 정세판단은 타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9년과 2014년 상황, 정세 판단이 유사하다고 정책까지 닮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2009년의 상황 판단이 올바른 정책으로 이어졌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위기에 휩싸인 북한을 보며 조금만 더 압박하면 체제가 붕괴할 것이란 판단으로 기울었다. 당장 북한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외부에서 정권교체를 추구한다면 김정일 체제는 위기에 처할 것이라며 미국까지 설득하고 나섰다.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미국 외교전문을 보면,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은 미국 당국자에게 북한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며, 한미 양국은 기다리며 압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미 당국자에게 북한 정권의 완전붕괴를 거론하며 북한붕괴시 북한 영토가 대한민국 일부임을 강조했다. 결국 미국도 북한을 방치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는 한국의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명박 정부 5년간 남북관계가 실종된 이유 중 하나는 대북정책을 바로 이런 급변사태에 기대어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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