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기름 바다'의 오명을 겨우 씻었나 했더니 이게 뭔일이랑께."
전남 여수국가산단 낙포동 GS칼텍스 원유2부두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여수시 삼일동 신덕마을 주민들은 설날 아침 들이닥친 날벼락에 망연자실했다.
사고 현장에서 2km 가량 떨어진 이 마을은 1995년 7월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로 직격탄을 맞았던 곳이다. 당시 14만5,000톤급 유조선 시프린스호가 여수 소리도 부근에서 태풍 '페이'로 좌초해 원유 등 5,000톤이 유출됐다. 여수 앞바다는 물론 일본 쓰시마섬 인근까지 기름띠가 퍼져 3,800여ha의 양식장이 황폐화됐고 1,5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이번 사고로 인한 원유 유출량은 훨씬 적지만 밤사이 조류를 타고 번진 기름띠 탓에 시커멓게 변한 마을 앞 포구와 해변을 보며 주민들은 19년 전의 악몽을 떠올렸다. 바지락과 해조류를 수확했던 마을공동어장 120.8㏊가 기름으로 범벅이 됐고, 미역과 파래, 톳을 채취하던 갯가 바위틈과 자갈밭도 검게 변해 해조류 채취는 아예 포기해야 할 판이다. 일부 주민들은 기름 냄새 탓에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기도 했다.
주민들은 당국과 GS칼텍스측의 안일한 대응으로 피해가 확산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 김모(53)씨는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바닷가로 나왔다가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바로 오지 않아 급한 마음에 친척들과 어선을 타고 기름띠를 제거하러 나섰다"고 말했다. 곽모(76ㆍ여)씨는 "시프린스호 참사로 어민들이 5년 넘게 고통을 받았다 겨우 살아났는데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겨 앞날이 걱정이다"고 울먹였다.
한편 사고 당시 접안을 위해 부두로 접근하던 유조선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돌진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해경과 GS칼텍스측에 따르면 사고 유조선은 부두를 100여m 앞두고 갑자기 정상선로에서 왼쪽으로 약 30도 가량 벗어난 상태로 자동차 급발진 사고처럼 속도를 높여 돌진, 원유 하역배관을 지지하는 해상 구조물인 돌핀 3개를 들이받았다.
여수해경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유조선이 접안을 할 때는 속도를 2노트 이하로 줄여 정지하고 엔진을 끈 상태에서 접안선 4대가 오른쪽에서 천천히 밀어서 접안시킨다"면서 "사고 원인을 정확히 밝혀 책임자들을 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흘째 이어진 방제 작업에는 해경경비함과 방제정 60척, 관공선ㆍ해군 고속정ㆍ민간 선박 등 모두 200여척이 투입됐고, 해경 기동방제단과 지자체 직원 등 2,000여명이 동원됐다.
여수=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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