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덕(不德)의 소치(所致)다.”
2007년 7월 남미 과테말라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총회(IOC)에서 소치가 평창을 누르고 2014년 제22회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됐을 때 평창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이 넋두리처럼 읊조리던 표현이다. 그만큼 소치는 애초 평창의 경쟁 상대감이 아니었지만 막판에 방심해 역전패를 당했다는 의미다.
러시아 남부 휴양지로 간간이 유명세를 얻던 지방 중소도시 소치가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는 올림픽 도시로 변모했다.
외신들은 공사기간 8년 동안 소치는 그야말로 상전벽해 했다고 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10억달러(54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한 까닭이다. 특히 올림픽 파크는 신도시로 태어났다. 대회 5일을 앞둔 2일 현재 소치는 각국 선수단과 취재진의 입국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소치 국제공항과 주요 기차역은 자원봉사자반, 올림픽 관광객 반으로 붐비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는 모스크바에서 1,600km를 날아온 20대 대학생부터 60대 은퇴자까지 다양했다. 길을 묻는 기자에게 한 자원봉사자는 자신도 소치가 처음 와 본 곳이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옆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며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치 구도심에서 올림픽 파크로 이동하는 데는 신설된 철도가 큰 몫을 했다. 흑해 연안을 끼고 달리는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지나자 올림픽 파크 입구에 도착했다.
소치 시내는 올림픽 분위기를 돋우는 광고판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자 이 같은 축제 흐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자가 묵고 있는 숙소인 바르다네는 소치 시내에서 30km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서는 올림픽 온풍은 물론 열기의 흔적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흔한 오륜기마저 구경하기 힘들었다. 자원봉사자는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고 현지인들도 대부분 차분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더구나 영어 소통자가 없어 난감했다.
지난달 23일 모스크바에서 올림픽 조직위 한국어 동시통역사로 선발돼, 파견 왔다는 조은영(27)씨는 “(소치는)지극히 평온한 분위기다. 오히려 모스크바가 더 들떠 있는 형국이다”고 말했다.
사실 소치에서 올림픽 개최는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게 국제스포츠 전문가들의 중평이다. 역대 올림픽 개최지는 대부분 수도(首都)였다. 2012년 런던이 그랬고 서울, 파리, 도쿄 등이 좋은 예다. 수도에서 하기 힘들었던 동계올림픽은 선진국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소치는 수도도 아니고 러시아 역시 선진국도 아니다. 그래서 일까 외신들은 정작 소치 올림픽 보다 테러우려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현장’은 사뭇 달랐다. 올림픽 조직위에서 주요 길목마다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지만 올림픽 대회 때마다 늘 보던 ‘그림’들이다. 러시아 언론들은 군경(軍警) 7만여명이 소치에 투입돼 테러 방지에 나섰다고 보도하고 있다. 2년 전 런던올림픽 때의 3배가 넘는 병력이다. 이와 별도로 소치에 인접한 남부 조지아와의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러시아 제58야전군이 비상 대기중이다. 푸틴과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이 강조한 ‘가장 안전한 올림픽’이 헛구호가 아님을 눈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존 주택을 허물고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생긴 건축 폐자재들이 시내에 방치돼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소치 올림픽 조직위는 “올림픽 인프라는 대부분 완공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경기장과 도로는 여전히 ‘공사중’ 입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각국에서 파견된 기자들이 취재 전쟁을 벌이는 메인프레스 센터는 대회 개막까지 여유가 있어 비교적 한산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소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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