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내달 17~22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자는 우리 정부 제안에 대해 사흘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측이 제안한 상봉 준비를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29일)이 무산된데 이어 2월 중순 상봉 행사 개최 가능성도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29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은 이날 가동된 판문점 연락 채널을 통해서도 이산상봉 관련한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는 우리가 설 연휴에 들어가 판문점 채널을 이용할 수 없다. 2월 첫째주에 남북이 상봉 행사에 합의를 하더라도 준비 기간이 채 열흘이 되지 않아 셋째주 상봉이 성사되려면 시간이 상당히 촉박하다.
정부는 뒤늦게라도 우리가 제시한 상봉 일정을 북측이 전격 수용하면 가급적 당초 예정대로 행사를 치르겠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상봉 명단 교환은 사실상 끝난 상태이고 시설 점검과 행정 절차를 최대한 단축할 경우 2월 셋째주 상봉이 무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북측에 재차 상봉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통일부는 대한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북측에 보낸 통지문에서 "북측이 이산상봉 제안을 수용하고도 상봉 행사 준비에 불분명하고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유감"이라며 "상봉 일자 등 행사 개최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길어지는 북한의 침묵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키 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 이전 상봉 행사 개최에 반감을 느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동신문은 이날 "북남관계를 개선하는 데서는 기본적 장애물인 군사적 적대행위를 끝장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미 군사훈련을 겨냥했다. 신문은 또 "키 리졸브 등 한미 합동군사연습은 평양 공격을 염두에 둔 미국의 도발"이라며 주로 미국을 위협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면서도 대남 비방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먼저 평화 공세를 펴며 남측을 대외관계 개선의 돌파구로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부가 군의 서북도서 해상 사격훈련 중단을 요구한 국방위 전통문을 묵살하자 불쾌감의 표시로 시간을 끄는 것일 수 있다"며 "아울러 군사훈련을 중지하지 않으면 이산상봉을 비롯한 남북관계 현안이 진전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향후 실무접촉 날짜를 새로 정하거나 자신들이 앞서 제안한 판문점 적십자 연락 통로를 통한 문서 교환 방식 등으로 이산상봉 의제를 수정 제의할 가능성이 높다. 대북 소식통은 "북측도 상봉 자체를 거부할 경우 인도적 사안을 군사적 문제와 연계시킨다는 비판 목소리가 커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상봉에 응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명분을 쌓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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