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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감은 싹둑… 가위손 할머니의 '따뜻한 설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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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감은 싹둑… 가위손 할머니의 '따뜻한 설맞이'

입력
2014.01.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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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성북초등학교 인근 도로변에 위치한 '새이용원'. 29일 오전 허름한 여닫이 문을 열고 이발소에 들어서자 손때 묻은 낡은 나무 이발대와 거울, 가위가 정겹게 눈에 들어왔다. "머리 깎으러 왔수?" 70대 노인 손님 머리 다듬기에 여념이 없던 이발사가 잠시 일을 멈추고 물어왔다. 자그마한 체구에 뽀글뽀글한 파마머리, 흰색 가운을 걸친 채 따뜻한 미소를 건넨 이발사는 놀랍게도 할머니. 올해로 이발사 경력만 60년째, 국내 최초 여성이발사 이덕훈(80) 할머니다.

할머니는 매일 오전 9시에 맞춰 이발소 문을 연다. 이발소의 정기 휴일인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 9시까지 꼬박 한나절을 일한다. 하루 12시간씩 불을 밝히는 13㎡(4평) 남짓한 작은 공간은 수십 년 단골손님들의 쉼터이자, 성북동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다. 이발소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할머니에게 머리를 맡겼던 인물 중에는 세상을 떠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장군의 아들' 김두한 전 의원 등이 있다.

"나이 여든이지만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할머니는 더 큰 행복의 비결로 "이웃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들었다. 이 할머니는 쉬는 날이면 동네 노인정을 돌며 어르신들의 머리를 깎는다. 머리를 예쁘게 깎고 난 후 밝은 표정을 짓는 노인들을 보면, 쉬는 날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것이 할머니의 지론이다. 자원봉사이긴 하나 완전히 공짜는 아니고 이발비로 1,000~2,000원씩을 받는다. 할머니는 "어르신들이 공짜로 머리를 하게 되면 미안한 마음이 커 오히려 이발을 꺼리게 되더라"며 "부담 없이 머리를 맡길 수 있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이발소의 '공식 이발비'는 1만원이지만 내부 공간 어디에도 가격은 적혀 있지 않다. 할머니가 받는 돈은 그때그때 다르다. 1만원을 온전히 받는 경우는 드물다. 1만원짜리 지폐를 받아도 손님의 형편에 따라 거스름돈을 더 내주기도, 덜 내주기도 한다. 할머니는 단골 손님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개인별 이발비가 머릿속에 입력돼 있는 셈이다. 이 할머니는 "정성 들여 머릴 깎는 것이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의 전부"라고 말했다.

늘 웃는 얼굴로 이발을 한다고 해서 동네 주민들에게 '명랑이발사'로 유명하지만, 그간 외로움의 시간이 길었던 할머니다. 생계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 이발사 일을 돕기 시작한 것이 벌써 60년. 그사이 가정을 꾸려 4명의 아들을 얻었지만, 둘째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등 아픔도 컸다. 돈에 신경 쓰지 않고, 주변 이웃들을 돕는 할머니의 '현재 모습'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만든 것인지 모른다. 매년 설, 가족 없이도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던 할머니지만 올해 설은 조금 더 특별하다. 지병으로 3년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던 셋째 아들의 병세가 호전돼 함께 설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아들 생각에 써 내려간 일기를 보며 눈물짓던 할머니는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고 싶다"며 말했다.

글ㆍ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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