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시에서 아기 전문 사진관 창업을 준비 중인 김모(36)씨는 사진업계 지인들로부터 "산부인과 한 군데만 뚫으면 다른 영업이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두 달간 시내 산부인과들을 거의 다 훑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미 계약을 맺은 사진관이 있거나 규모가 큰 병원은 높은 권리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이 '알짜 영업처'가 된 지 오래지만 수천만원이나 되는 권리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에서 영세업체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소연했다.
신생아가 첫 돌을 맞기 전까지의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는 성장앨범이 유행하는 이면에는 병원과 사진관의 '돈 거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종 피해는 산모 등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 이용자에게 돌아가지만 규제 장치는 없다.
29일 사진업계에 따르면 아기 전문 사진관들은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에서 독점영업을 하기 위해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권리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체 홍보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 사진업체들은 막대한 자금 부담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의 영업을 위해 앞다퉈 달려들고 있다.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산후조리원은 최소 1,500만원에서 최대 1억원, 분만실적이 월 100건 이상인 산부인과는 최소 5,000만원의 권리금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업계의 한 관계자는 "권리금 이외에도 병원 측에서 초음파 영상녹화장비 등 고가의 장비나 산모수첩 등 소모품을 요구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며 "권리금, 지원 장비 등은 중간 관리자에게 비자금처럼 전달되고, 세금 계산서도 발행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독점 계약을 맺은 사진업체의 영업 방식은 비슷하다. 병원 등은 산모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신생아실에서 산모와의 직접 접촉을 허용하고, 업체는 만삭 사진이나 신생아 사진을 무료로 찍은 뒤 이를 미끼로 고가의 앨범 제작을 권하는 식이다. 업체는 계약기간 내 본전을 뽑기 위해 원가는 낮지만 판매가는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패키지 앨범 구매를 유도한다. 결국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이 챙긴 권리금 등을 산모들이 부담하는 셈이다.
한국프로사진협회의 한 회원은 "대형 사진관들이 고가의 권리금을 내고 병원과 연결하는 행위는 시장의 독과점을 심화시킨다"며 "소규모 사진관들은 줄도산할 우려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병원과 사진업체 간의 사적 계약과 돈을 매개로 한 업계의 마케팅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권리금을 내고 독점영업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 소비자가 피해를 입은 구체적인 사례가 접수되면 제재를 가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