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제2의 밀양 사태' 우려가 컸던 '765㎸ 신중부변전소 및 송전선로 건설공사'가 한국전력과 지역주민들 간 상생협약 체결로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게 된 건(본보 29일자 2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한전이 사업 초기부터 건설예정지(충북 청원군) 주민들과의 소통 강화에 힘쓰고, 반대 주민들 또한 대승적 결단으로 화답한 덕분이다. 소모적인 갈등의 장기화를 피했다는 점에서 분명 박수칠 일이다. '한전의 사업방식이 달라지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8일 배포된 한전의 보도자료를 보면서, 특히 갈등해소 성공요인으로 '외부세력 개입이 없었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한 대목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총 4쪽짜리 보도자료에 이런 표현은 5번이나 등장한다. 직접 언급은 없지만 지금도 반대운동이 계속되는 경남 밀양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물론 틀린 얘긴 아니다. 밀양엔 분명 외부세력이 있었고, 청원엔 없었다. 밀양은 여전히 물리적 대치상태지만, 청원은 평화롭게 끝났다. 하지만 외부세력 유무만 비교할 게 아니라, 왜 외부세력이 들어왔는지를 따져야 한다. 밀양시민들이 특별히 불온해서? 아니면 청원군민들은 독자적이고 건전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외부세력의 개입을 초래한 건 애초 정부와 한전의 일방통행식 추진방식이었다. 초고압 송전탑이나 변전소가 마을에 들어서는 걸 환영할 사람은 없다. 때문에 주민들에 대한 설득과 의사반영, 합리적 보상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밀양엔 그게 없었다. 공권력에 외면당한 주민들로선 '외부세력'인 시민사회 쪽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청원에서 외부개입이 없었던 건 밀양에서와 달리, 한전이 주민 목소리에 귀를 열었기 때문이었다.
한전이 모처럼 열린 자세로 송전탑 건설을 성사시켰음에도, 여전히 '외부세력' 운운하는 건 매우 유감스런 대목이다. 더구나 '외부세력'이란 용어에는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내포돼 있다. 계속 이런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다음 송전탑은 제2의 청원이 되기보다는 제2의 밀양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김정우 산업부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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