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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동호 '생애 첫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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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동호 '생애 첫나들이'

입력
2014.01.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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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 250㎏인 스무 살 동호(가명)씨. 첫돌 무렵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은 그는 온 힘을 쏟아야 잠깐 일어설 뿐 몇 걸음 떼지도 못한다. 운동을 못해 성장하면서 고도비만이 된 그는 따사로운 햇볕 한번 못 쬐고 집에만 머물렀다. 바다를 보는 게 동호씨의 소원이지만 부모는 거구의 둘째 아들을 차에 태울 엄두도 내지 못한다. 바다 사진만 보여줄 뿐이다.

그런 동호씨가 지난 28일 설맞이 나들이에 나섰다. 서울 중랑소방서 구급대원들이 동호씨의 생애 첫 나들이를 도왔다. 이날 오후 1시 대원들이 동호씨네를 찾았을 때 손가락을 입에 물고 빤히 쳐다보던 그는 서둘러 나가고 싶은지 현관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구급대원 6명이 동호씨를 옮기는 작전에 돌입했다. 대원들은 먼저 몸에 맞는 속옷조차 없어 맨몸이던 그에게 특수 제작한 초대형 옷을 입혔다. 허리 둘레 78인치, 허벅지 46인치, 어깨 넓이 27인치인 이 옷은 관내 한 봉제공장 사장이 기부했다. 동호씨를 차로 옮기는 데는 최대 180㎏까지 견디는 일반구급용 들것 대신 전문산악구조용 들것이 동원됐다. 계단을 내려와 5m 밖에 세워 둔 9인승 소방차량에 태우기까지 30분이 걸렸다. 대원들은 전날 차량 안 의자 3개를 떼내고 대형매트를 깔아두었다. 진땀을 쏟은 대원들은 동호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허리를 두드리고 기지개를 켰다.

소방관들이 동호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한밤 중 3시간 넘게 코피가 멎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동호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 가는 데 소풍 가는 것마냥 들떠있던 친구를 보니 안쓰러웠다"는 김영관 소방위는 동료들과 상의해 동호씨에게 '외출'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는 "동호의 나들이를 도와 뿌듯하다"고 했다.

나들이에는 엄마 박모(54)씨가 함께했다. 소방서 구경에 이어 경기 남양주 팔당댐을 거쳐 양평 두물머리까지 달리는 동안 동호씨는 흘러 나오는 동요에 맞춰 연신 어깨를 들썩였다. 소방관 2명만 동행한 탓에 동호씨를 차에서 내릴 수 없어 일행은 찐빵으로 끼니를 대신하고 구경도 차 안에 앉아서 했다. 소방관들은 창에 서리가 끼면 잽싸게 닦았다. 동호씨가 난생 처음 보는 바깥 풍경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다.

박씨의 나들이도 10년 만이다. 정신지체인 큰아들(22)과 동호씨를 돌보느라 바깥 구경은 상상조차 못했다. 박씨는 오랜만에 곱게 화장도 했다. 그는 "두 아들과 오래오래 살다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뿐이었는데 생각지도 않던 외출을 하게 돼 너무 감격스럽다"면서 소방관들의 손을 꼭 잡고 고마움을 전했다. 동호씨도 6시간의 '나들이 대작전'을 무사히 마치고 떠나는 소방관들에게 손을 흔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방관들은 앞으로도 동호씨의 외출 도우미가 돼 주기로 약속했다.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 '핫라인'도 제공했다. 퇴원 이후 이송은 구급구조 요청 거절사유에 해당하지만 동호씨는 예외로 하기로 했다.

글ㆍ사진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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