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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월 30일] 설 음식

입력
2014.01.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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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산골의 설 준비는 일주일 전부터 시작됐다. 불린 쌀을 담은 큰 광주리를 인 어머니를 따라 방앗간으로 갔다. 불린 쌀을 곱게 빻아 시루에 담아 쪄서 기계에 넣으면 하얀 가래떡이 두 가닥으로 길게 쏟아졌다. 떨어져 내리는 가래떡을 가위로 적당히 잘라 큰 함지의 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광주리에 차곡차곡 옮겨 담았다. 맨 끝에 가늘게 나오는 떡은 아이들 차지였다. 며칠 뒤 굳은 가래떡을 썰고, 쇠고기 꾸미와 지단을 만들면 떡국 준비가 끝났다.

■ 그 다음은 강정 만들기였다. 쌀 튀밥과 볶은 콩, 들깨에 각각 뜨겁게 데운 조청을 부어 버무린 후 넓은 쟁반에 쏟고 밀대로 밀어 적당한 두께로 고르게 폈다. 바싹 말라 부서지기 전에 칼로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생강 물로 반죽한 찹쌀 가루를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튀겨낸 뒤 조청을 버무려 약과도 만들었다. 식혜와 수정과까지 만들고 난 뒤, 설 전날은 종일 각종 전을 부치느라 고소한 기름내가 진동했다. 이 모든 일을 어머니 혼자 떠안았다.

■ 그런데도 한 마디 불평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설 음식이 아니라고 편히 쉴 형편이 아니었고, 설 앞뒤를 통튼 전체 가사 노동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일본의 설 음식인 '오세치'가 설날 이후 며칠 동안 주부를 편하게 하는 기능을 하듯, 우리 전통 설 음식도 준비를 마치고 나면 평소보다 일손을 줄여준다. 맹물에 떡만 넣고 끓여 꾸미와 김가루, 후추로 맛을 내는 떡국은 라면보다도 요리와 설거지가 간단하다. 전과 강정 위주의 손님상 차림도 편하다.

■ 그러니 '명절 증후군' 등 며느리의 고통은 노동의 혹독함 때문이 아니다. 고생이 가장 큰 맏며느리보다 둘째 셋째 며느리의 불평이 잦다. 맛있는 음식이 워낙 많아져서 가족들 입에 맛 있는 것 들어가는 기쁨이 줄어든 반면, 남녀평등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왜 여자들만 고생을 시키느냐는 심리적 요인이 크다. 핵가족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좁은 가족인식도 한몫 한다. 대가족의 소통과 화합이라는 보람의 자각, 남편의 협력에 따른 안도감이 묘약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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