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대폭 상향 등 중산층 살리기에 역점의회 발목잡기 불용 표명… 중간선거 주도권 포석"타협을 모르는 대통령" 공화당은 강력 비판북핵 문제 등 거론 없어 외교는 뒷전으로 밀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8일 새해 국정연설에서 민생경제 살리기를 화두로 던졌다. '모두에게 기회를' 이란 제목의 연설에서는 '북핵'이나 '한국'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국내 문제에 '올인'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여섯 번째인 국정연설의 마지막에는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군인을 등장시켜 미국민이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순간도 연출했다.
타협보다 강공으로
오바마는 올해를 '행동의 해'로 정하고 경제불평등 해소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65분 연설 동안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일자리, 고용과 실업, 경제, 중산층, 평등, 기회, 공정 등 민생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는 "보통사람의 삶과 희망, 열망에 대한 믿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며 "더 이상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독자행동에 나서겠다"고 의회에 경고했다. 백악관은 독자행동이 의회승인이 필요 없는 대통령 고유권한인 행정명령을 발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바마는 연방정부 연관기업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현재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상향조정하고, 수백만 미국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퇴직연금계좌(myRA)를 만드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는 또 29일부터 이틀간 4개주를 돌며 국민을 설득하는 민생투어에 나선다. 의회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오바마가 타협을 모르는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대통령이 법을 충실히 지키는지 면밀히 지켜보겠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선거겨냥 재탕정책
민생경제 강조는 지난 2년 오바마 국정연설의 재탕에 가깝다. 그는 재선을 앞둔 2012년에도 중산층을 겨냥한 정책을 제시했다. 경제불평등과 빈부격차의 해소, 일자리 창출, 공정한 사회 등을 강조하며 부자, 대기업들과 거리를 두려 했다. 재선에 성공한 뒤인 지난해에도 역시 자신의 지지층인 중산층을 위한 청사진으로 최저임금 상향 등을 제시했다. 당시 그는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9달러로 올리겠다고 말했으나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오바마가 공화당이 버티고 선 의회를 피해 행정명령을 동원해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것도 지난해 국정연설 내용과 흡사하다.
재탕 정책의 배경에는 이반된 민심을 다잡아 국정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다수당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상원 다수당마저 위협받고 있다. 오바마가 상원마저 내주면 남은 임기 2년은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뒷전으로 밀린 외교
외교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 성과를 낸 이란 핵협상과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에 시간을 할애했다. 만약 "의회가 이란 추가제재법을 가결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악화하고 있는 동아시아 갈등이나 북핵, 북한 문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초점을 맞춰 동맹국을 지원하겠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미군 철군 이후에도 소규모 미군을 주둔시키겠다고 밝혔다. 관타나모 수감시설에 대해선 "폐쇄할 때"라고 말했다. 국정연설이 끝난 뒤 국무부는 오바마의 발언 가운데 "힘있으면서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포함해 여러 종류의 파워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미국의 안보와 리더십이 존재하는 것이다"는 부분을 외신기자들에게 별도로 배포해 강조했다.
'한국' '북한' 언급 없어
오바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2011년 국정연설에서 무려 일곱 차례나 거론하며 특히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했던 때와 대비된다. 당시 국정연설 행사에 참석했던 세계 각국 대사들은 한덕수 주미 대사에게 오바마가 수억 달러짜리 한국 홍보를 해줬다는 덕담을 할 정도였다. 2012년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강조하며 "미국 차들이 한국의 서울 거리를 달릴 것"이라며 한차례 언급했다.
미국 권력이 한자리에
국정연설이 진행된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는 입법ㆍ사법ㆍ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치 정치극장을 방불케 했다.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도 얼굴을 비쳤다. 연설의 정점은 아프간 파병 중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나 수십 차례 수술을 받은 코리 렘스버그 육군 중사를 소개할 때였다. 미셸 오바마 옆 자리에서 그가 일어서자 오바마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2분 넘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지금까지 네 차례나 렘스버그를 만났던 오바마는 재활을 향한 그의 분투를 설명한 뒤 미국 최고의 오피니언리더들을 향해 렘스버그의 말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인생에서 가치 있으면서 쉬운 일은 없다(Nothing in life that's worth anything is easy)."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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