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고통 이제 내려놓으시고 하늘에서 편안하게 쉬세요."
28일 오전 서울 화곡동 강서구청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의 영결식. 양아들 김정환(49)씨가 '어머니' 황 할머니의 영정에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모자(母子)의 연을 맺고 10여년을 한결같이 사랑했던 어머니 앞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는 김씨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김씨는 "올 설에도 아들과 세배 드리려 했는데, 설이라도 쇠고 가시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황 할머니를 처음 알게 된 건 2002년 강서구 등촌3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담당으로 근무하면서부터다. 주민센터에 매일같이 찾아와 사회 불만을 토로하는 차가운 인상의 할머니를 동료 공무원들은 어려워했다. 아니 괴팍하게 여겼다. 가장 선임이던 김씨가 대화에 나섰고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교복을 입은 학생을 보고도 어머니는 일본군 순사로 오해하는 등 위안부 피해로 인한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며 "약물치료를 받으며 혼자 지내는 그분의 아들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장, 병원에 아들처럼 따라 다녔던 김씨의 살가운 모습에 황 할머니가 마음을 열면서 두 사람은 모자가 됐다.
김씨는 생전의 황 할머니를 "학생들의 배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황 할머니는 2006년 4,000여만원, 2008년과 2010년 각각 3,000여만원씩 모두 1억여원을 강서구 장학회에 기부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일본군 위안부 생활안정지원금 등 정부 보조금을 아껴 모은 돈이었다. 김씨는 "일본이 사과의 뜻을 밝히고 배상한다면 그 돈도 전부 기부하길 원하셨다"며 "어머니는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일제강점기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믿으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살던 30㎡(10평형) 남짓한 등촌3동 영구임대아파트의 보증금과 예금 잔액 등 500여만원도 장학금으로 내놓고 떠났다.
40여분간 강서구민장으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에는 구청 직원, 시민 등 1,500여명이 참석해 황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정태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생존자복지위원장은 "일본 우익뿐 아니라 우리 사회 한쪽에서도 교과서 왜곡을 통해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의 역사를 부인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천국에서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신기남 민주당 의원은 "소망하셨던 일본의 사죄를 꼭 받아낼 것"이라 말했고,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할머니는 그윽한 향기로 우리 곁에 함께 계실 것"이라고 추모했다.
장의위원회는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을 경기 파주 천주교 삼각지성당 하늘묘원에 안장했다. "일본군에게 당한 불고문 때문에 뜨거운 것은 몸서리치게 싫다"던 황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화장은 하지 않았다. 황 할머니의 사망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5명으로 줄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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