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8일 우리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 제안에 끝내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키 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 이전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려는 정부 계획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연장 근무까지 하며 판문점 연락 채널 가동했으나 북측은 이산상봉과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28일을 사실상 북측의 답변 시한으로 봤다. 전날 이산상봉 일정과 함께 29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상봉 준비를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남북이 대면 만남을 할 경우 하루 전 대표단 명단을 교환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으로 이날까지 북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29일 실무접촉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통일부도 "북측이 답을 주지 않아 예정된 실무접촉은 무산됐다"고 확인했다. 이에 따라 남측이 30일부터는 설 연휴에 들어가 실무접촉 날짜를 다시 잡아도 2월 초에나 가능하고, 이 경우 준비 기간이 빠듯해 2월 셋째주 상봉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단 30일까지는 북측의 반응을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당국자는 "북측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만큼 수정제의를 해올 수는 있다"며 "우리 제안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분석해 판단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입장 표명이 늦어지는 이유는 우리 제안을 살펴 볼 부분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가 먼저 "설이 지나 남측이 편한 대로 정하라"며 상봉 시기를 남측에 일임했지만, 정부가 북측이 반발해 왔던 키 리졸브 훈련 전에 날짜를 잡자 수용 여부를 고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북측은 이날 오후 4시까지 운용하는 판문점 채널도 오후 6시10분까지 열어 놨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북한도 내부 입장을 조율하는 것 같고 그 과정이 길어지면서 철수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북측은 '판문점 적십자 연락통로'를 협의 방식으로 제시한 반면, 정부는 남북 당국이 직접 만나는 적십자 실무접촉을 제의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응답이 늦어질수록 2월 중순(17~22일) 상봉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측은 실무접촉 자리에 나와 이산상봉 자체는 수용하되 이를 전제로 상봉 시기를 뒤로 미루면서 다른 의제를 패키지로 논의하자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상호 비방 전단(삐라) 살포를 중단하거나 북한이 최근 강조하는 서해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 실무회담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놓을 수 있다.
북한이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남측 제안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처럼 이산상봉 제안과 군사적 긴장완화 요구 등 평화 공세로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북한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 통 큰 결정을 내리는 식으로 이산상봉을 수용한 뒤 금강산관광 재개 등 다음 단계를 모색할 여지가 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속내가 무엇이든 적십자 실무접촉 의제를 인도적 사안에만 국한한 정부 원칙에는 어긋나는 것"이라며 "만약 이산상봉이 성사되더라도 남북관계의 점진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1회성 행사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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