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전문상담사로 일한 최모씨는 자신이 상담했던 정모(15)양 생각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한 정양은 중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혼자 먹기 싫어 점심은 굶었고 체육시간에는 홀로 서성였다. 같은 학교 3학년인 오빠는 정양에게 "창피하니까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다. 상담치료로 정양이 제법 감정표현을 하게 된 지난해 12월, 최씨는 계약이 끝나 내쫓기듯 학교를 떠났다. 그는 "다음달 2일 개학하면 상담실에 놀러오겠다고 하는 정양에게 차마 학교를 나가게 됐다고 말하지 못했다"며 "정양이 힘겹게 연 마음의 문을 다시 닫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시도 교육청들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꺼려 상담교사 수천명을 계약해지하면서 학생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28일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 따르면 인천ㆍ대전ㆍ세종ㆍ전북ㆍ전남ㆍ경북ㆍ제주 등 7개 지역의 초ㆍ중ㆍ고교에서 근무한 전문상담사 1,067명과 스포츠강사 3,800여명 등 4,800여명이 지난해 12월로 계약종료됐다. 올해 2월 계약만료를 앞둔 전문상담사 2,358명까지 포함하면 7,000명이 넘는다. 지난 16일부터 각 시ㆍ도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나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요구는 "무기계약직 전환"이다.
특히 상담교사의 잦은 교체는 위기 학생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전남에서 상담교사로 활동한 김가영씨는 "상담치료는 지속적인 대화와 신뢰 쌓기가 중요한데, 상담교사가 자주 바뀌면 잘 해보려던 아이들도 마음을 닫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퇴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ㆍ도교육청은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매년 3~12월 10개월 단위 채용 계약을 맺는다. 교육부 김영진 학교폭력대책과장은 "일한 기간이 1년을 넘지 않으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아니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반면 강원도교육청은 올해 2월 계약 만료되는 상담교사 256명 모두와 무기계약을 맺기로 했다. 결국 "교육감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이윤재 정책국장은 "교육부의 지침을 방패막이로 내세웠지만 실은 교육청 예산으로 정년 때까지 월급, 퇴직금을 주기가 부담스러워 소극적인 것"이라며 "고위험 학생들을 위한 상담치료의 질을 위해서라도 상담교사 등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고용보장대책을 수립하지 않을 경우 다음달 7, 8일 전국 시ㆍ도 교육청 앞에서 1만여명이 참가하는 규탄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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