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8일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한층 강화한 중ㆍ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발표하면서 한일관계는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 관계개선을 위한 실마리를 좀체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 대형 악재가 불거지면서 한일 갈등 수위가 한껏 고조되는 양상이다.
미래세대 담보로 갈등 키워
일본 정부는 2주 전인 지난 14일 이번 해설서 개정 지침을 공식화했다. 따라서 이날 발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난달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처럼 느닷없이 뒤통수를 치는 도발과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발표는 한일관계에 두고두고 상당한 충격을 주는 사안이다. 교과서 해설서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쳐 이웃국민들과의 반목과 분쟁의 씨앗을 심고 있다"고 강력 비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해설서는 말 그대로 교육현장의 지침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사고형성에 작용해 한일관계에 장기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아베 정권이 지지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래세대를 담보로 한일관계를 구조적인 갈등과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아베 정권의 '일방주의' 사고가 깔려 있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아베 총리는 한국과의 감정이 악화될수록 정권의 지지도와 강한 일본 건설, 그리고 실질적인 우경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부, 대응 강도 높아질 듯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 침탈만행사 국제공동연구 추진 등 아베 정권의 국제적, 정치적 고립을 겨냥하고 있지만 로키(low-key), 즉 저강도 대응을 하고 있다. 이는 온통 지뢰밭투성이인 올해 한일관계 일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내달 22일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행사, 4월 춘제, 5월 외교청서, 7월 방위백서 등 악재가 줄줄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배상판결까지 나올 경우 한일수교 50년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진창수 센터장은 "한일관계에는 사실상 매달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매번 일본은 도발하고 우리는 항의를 하다 보면 건설적인 얘기를 나눌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반부터 고강도 대응을 할 경우 정작 중요한 때 일본을 압박할 카드가 없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때 한일 양국 방문이 유력한 만큼 양국이 어떤 식으로든 한일관계에 돌파구를 찾아야 할 필요성도 있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가령 8월 광복절에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으면 우리 정부는 이를 관계개선의 실마리로 보고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 정부 대응은 한일관계의 파국적 상황만은 피하자는 의도가 짙지만 아베 정권의 우경화 도발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경우 2008년 교과서 해설서 개정 때와 같이 주일 한국대사 귀국조치라는 외교적 극약처방을 꺼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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