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북한에 가 가족들과 꼭 만나고 싶습니다."
1951년 1ㆍ4후퇴 때 고향 황해도 연백군에 가족을 남겨두고 삼촌, 오빠와 셋이서만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 63년간 생이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이산가족 유선비(81) 할머니.
28일 수화기 넘어 들리는 유 할머니의 목소리는 꿈에서만 그려온 북측 동생들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과 또다시 상봉이 무산돼 가족들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교차하며 크게 떨렸다.
유 할머니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대한적십자사로부터 북측 동생들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하루라도 빨리 상봉이 결정돼 만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 할머니는 지난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측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결과, 아버지와 여동생은 이미 사망하고, 동생 3명만 살아있어, 추석 이산상봉 행사를 계기로 이들과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러나 당시 북한의 갑작스러운 행사 연기 통보로 평생의 소원이 좌절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가족과의 상봉이 무산된 충격으로 유 할머니는 몸져 눕는 날이 많아져 가족들은 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유 할머니의 딸 홍성신(43)씨는 "이제 겨우 기력을 찾았는데 혹시 이번에도 북한에 못 가게 되면 정말 쓰러지신다"고 우려감을 내비쳤다.
슬하에 1남1녀를 둔 유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이혼 후 연락 두절이 돼 지금은 군 입대를 앞둔 손자와 외롭게 살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매월 정부의 지원금만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유 할머니는 고령으로 다리가 아파 혼자서 거동도 쉽지 않지만, 이번엔 꼭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유 할머니는 "북한이 먼저 말을 꺼냈으니 잘되지 않겠어요"라며 "북한이 하루빨리 우리 정부의 제안에 답을 해 주길 바란다"며 초조함을 내보였다.
한편 이날 유 할머니 집에는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설을 맞아 위로차 방문했다. 유 총재는 설 선물과 위로금을 전달하며 "지난해 무산된 이산가족 상봉이 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유 할머니는 "동생들이 다 늙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지 걱정"이라면서도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지난가을 무산된 이산상봉 당시 마련한 선물 꾸러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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