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다양하다. 막 20대 문턱에 이른 여배우가 70대 노인으로 변신하고 한창 잘나가는 청춘스타가 1980년대 시골 고등학생을 연기한다. 여기에 한 사내의 얼큰한 사랑에 미녀들의 무협이 포개진다. 한때 명절 단골손님이었던 홍콩스타 청룽까지 가세한다. 다양성만 따져도 올 설 연휴 극장가의 상차림은 푸짐하기만 하다.
청춘 남녀의 사투리 배틀
명절기간 동안 두 청춘 남녀가 사투리로 일합을 겨룬다.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은 전라도 사투리로, '피 끓는 청춘'의 대세 배우 이종석은 충청도 사투리로 연휴 관객을 공략한다.
'수상한 그녀'는 70대 노인 오말순(나문희)이 문득 20대의 몸을 가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20대의 몸으로 70대의 정신을 갖게 된 오말순은 '~겨'로 끝을 맺는 전라도 사투리로 주변 사람들을 거칠게 타박하다가도 끝내 가족의 사랑을 온전히 전한다. 젊은 오말순을 연기한 심은경의 연기가 발군이다. 심은경의, 심은경에 의한 영화라 해도 과하지 않다. 심은경은 팔자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종행하며 웃음을 불러내다가도 맛깔스러운 노래 실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상영시간 124분을 심은경의 개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이야기 진행이 좀 지루하기는 하다. 노령화 현상이 빚은 가족 안의 갈등을 어설피 봉합하는 결론에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도 꽤 많을 듯하다.
'피 끓는 청춘'은 1980년대 초반 충청도의 한 시골을 배경으로 피 끓는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주변 모든 여학생을 꾀는 게 목표인 카사노바 고교생 중길(이종석)과 여고 일진인 영숙(박보영), 서울에서 전학 온 신비로운 소녀 소희(이세영) 등의 다각관계가 웃음과 낭만을 만들어낸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여성들의 마음을 훔쳤던 이종석이 서울내기로 멋진 척하는 대신 비겁한 시골 바람둥이를 택한 것만으로도 인상적인 영화다. 나팔바지와 교복, 빵집 데이트 등 시간 속에 묻힌 소품과 소재가 40대 이상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낼 만하다. 젊은 배우들의 연기 변신이 눈에 띄나 지나친 추억 팔기가 되려 약점으로 작용할 듯.
사나이의 사랑이냐 언니들의 액션이냐
'남자가 사랑할 때'는 한 남자의 우직한 사랑으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려 한다. 퇴락한 중소도시의 외형을 갖춘 전북 군산시를 배경으로 해결사 태일(황정민)과 호정(한혜진)의 보기 드문 연정을 스크린에 새긴다. 결혼한 형에게 마흔이 되도록 얹혀살고 주먹과 욕설을 호구지책으로 삼은 태일의 사랑이 연민을 자아낸다. 두 남녀의 사랑 위에 가족애의 소중함을 포개기도 한다. 언제나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황정민의 열연이 역시나 돋보인다. 야비하나 진한 정을 숨겨둔 영화 '신세계'의 깡패 정청을 연상시키면서도 군내 나는 삶에 수긍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태일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진한 사랑과 살가운 가족애, 적당한 웃음이 섞인 영화다. 관객의 다양한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이다 보니 이야기 진행이 좀 산만하다.
'조선미녀삼총사'는 제목이 암시하듯 할리우드영화 '미녀삼총사'의 조선판을 지향한다. 웬만한 남자들도 꼼짝 못할 무술 실력을 지닌 진옥(하지원)과 홍단(강예원), 가비(가인)가 조정을 구하고 사랑까지 얻는 활약상을 그렸다. 퓨전사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관객들 눈에는 많이 거슬릴 듯. 어떤 역할이든 제 몫을 다하는 하지원의 고군분투가 그나마 볼만하다.
진격의 애니메이션 vs 돌아온 명절 스타
외화로는 괴력의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과 홍콩 영화 '폴리스 스토리 2014'가 설 연휴 흥행대전에 나선다.
16일 개봉한 '겨울왕국'은 현재 극장가의 흥행 지존이다. 지난 주말 '수상한 그녀'와 '피 끓는 청춘' '남자가 사랑할 때'와 벌인 설 연휴 전초전에서 이미 기선을 제압했다. 마법을 지닌 얼음공주 엘사와 그녀의 동생 안나의 우애를 지렛대로 옛 동화의 상투적인 이야기를 뒤집는다. 입체감 있는 눈과 얼음의 결정 등 뛰어난 세공술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뮤지컬 형식의 애니메이션으로 귀까지 즐거운 영화라는 점이 주요 흥행 포인트다.
'폴리스 스토리 2014'는 명절이면 한국을 찾곤 하던 청룽의 귀환작이다. 한 범인에게 잡힌 딸과 인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강력계 형사 종(청룽)의 활약상을 담았다. 예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몸으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청룽의 투혼이 도드라진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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