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제작업체 대표 A(57)씨는 2007년 난생 처음 경찰 조사를 받았다. 고속도로 증설구간을 추가한 개정판 지도를 냈다가 재(再)간행 심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 고발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정할 때마다 재심사를 요구하고, 이를 어기면 형법을 적용해 업계에서 '손톱 밑 가시'로 꼽혔던 재간행 심사규정이 6년 만에 슬그머니 부활해 지도업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완화기조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높다.
27일 국토부에 따르면 '측량ㆍ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 지난 17일 일부 개정되면서 2008년 정부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폐지됐었던 재간행 심사규정이 되살아났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지도 개정판을 낼 때마다 첫 간행 때와 마찬가지로 심사 수수료와 복잡한 구비서류를 매번 대한측량협회에 내게 됐다.
업체들은 내비게이션과 인터넷 지도 활성화로 고사 직전인 종이지도 제작업체들에게 불필요한 행정적, 경제적 부담을 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관호 영진지도 대표는 "지도 팔아서 얼마 남지도 않는 돈의 10% 정도를 측량협회가 매년 가져가는 것인데, 업체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개정판을 만들면서 추가로 돈까지 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심사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용역을 받아 대한측량협회가 대행하고 있다. 협회에는 국토지리정보원 출신 공무원들이 여럿 포진해 있어 협회 이권을 챙겨주기 위한 법 개정이라는 말도 분분하다.
법 개정에 대해 국토부 공간정보기획과 관계자는 "인터넷 지도업체 등이 (2만5,000분의 1 같이 넓은 지역을 간략하게 나타내는) 소축척 지도로 쉽게 간행심사를 통과한 뒤 실제로는 (5,000분의 1 같은) 대축척 지도를 표시하는가 하면, 내용을 대폭 바꾼 뒤에도 재간행이라는 이유로 심사를 피해가는 등 편법을 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편법이 발생하지 않는 종이지도 제작업체들에 대해서는 "(파급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하지 못했다.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빤히 보이는 부작용을 무시한 채 법이 개정된 것은 의견수렴 절차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입법예고를 했지만 홈페이지 구석에만 공고를 내 일부러 찾아보지 않고서는 개정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측량협회를 통한 홍보나 의견 수렴절차는 전혀 없었다. 2008년 재간행 심사 폐지 당시 '규제 개혁'이라며 보도자료를 내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법 개정 10일만인 이날 뒤늦게 법 개정사항을 알리겠다며 지도업체 대표 등을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가 빈축만 샀다.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은 "규정을 바꾼 뒤 간담회를 열어 어쩌겠다는 것이냐"며 "규제를 푼다는 정부가 오히려 없어졌던 규제를 되살려 영세 지도업자들을 고사시키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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