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
혹한의 추위가 몰아친 이 날, 지구촌의 눈과 귀가 케네디 우주센터가 자리한 이곳에 집중돼 있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 2, 1. 발사!
오전 11시 38분, 승무원 7명을 태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고 TV와 망원경을 통해 발사 장면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연기를 뚫고 솟아오르는 우주선의 위용에 넋을 잃고 환호했다.
하지만 이들의 탄성이 경악과 슬픔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발사 73초 후, 우주선은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며 공중에서 부서져 내렸다. 미국 우주계획 역사상 최악의 사고였으며,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과 행진에 급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민간인 신분으로 탑승해 우주에서 원격 수업을 진행하려 했던 37세의 여교사 크리스타 매컬리프의 꿈도 산산조각이 됐다.
사고의 결정적 원인은 오른쪽 로켓 부스터에 있는 원형 링의 결함이었다. 부스터 이음새를 밀봉해주는 링이 추운 날씨로 인해 얼어붙었고, 틈새의 고압 연료에 불이 옮겨붙으며 연료탱크와 챌린저호 본체가 압력을 이기지 못해 폭발해버린 것이다.
컬럼비아호의 뒤를 이어 1983년부터 우주왕복선의 명맥을 이은 챌린저호의 열 번째 비행 임무는 자못 흥미로웠다. NASA는 평범한 교사를 우주인으로 선발해 원격 강의를 시도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수많은 교사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뉴햄프셔 콩코드 고등학교 여교사였던 매컬리프가 1만 1,000명의 경쟁을 뚫고 영예의 주인공이 됐지만, 그녀의 꿈은 결국 함께 탑승한 6명의 우주인과 함께 비극적인 종말을 맺고 말았다.
챌린저호 참사 충격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황금기를 구가하던 우주왕복선 발사 계획이 2년이 넘게 전면 중단됐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딴 학교와 도로 등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송암천문대에도 챌린저 러닝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1981년 4월 첫 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지구를 떠난 이래 미국은 챌린저호와 디스커버리호 그리고 애틀란티스호와 인데버호 등 5대의 우주왕복선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우주정복의 눈부신 성과 이면에는 86년 1월 28일 챌린저호에 탑승했던 우주인들의 아름다운 꿈도 함께 묻혀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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